기업에서 새로운 생산설비를 가동하거나 매출이 급증할 때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담당하는 임직원이다. 한 대기업 ESG 담당자는 “업황이 좋아 공장을 완전가동하는 해엔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소비도 늘어난다”며 “회사가 잘 굴러가는 건 좋지만 ESG 순위 하락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3일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많이 참조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2019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BBB) 현대자동차(B) SK하이닉스(BB) 등 국내 ‘빅3’의 ESG 등급 앞자리는 모두 ‘B’다. 포스코(BBB)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제조업 비중이 높다 보니 E(환경)와 관련한 점수에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경제신문과 IBS컨설팅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 주요 20개 기업 중 2017~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한 곳은 9곳, 에너지 소비를 줄인 곳은 5곳에 그쳤다. 제조업이 핵심인 한국 대기업의 특성상 글로벌 평가기관의 눈높이를 맞출 만큼 환경 관련 지표를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평가기관들이 최고경영자(CEO) 형사처벌 규정이 유독 많은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점도 ESG 등급이 낮게 나오는 이유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ESG의 규범화와 제도화가 좀 더 진행되면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ESG를 투자 잣대로 삼는 글로벌 펀드들이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유럽 국가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업체에 ‘탄소세 폭탄’을 물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3억1500만t을 줄여야 하는 한국 정부가 오염물질 배출 기업의 벌금을 선제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모 삼성증권 ESG연구소장은 “한국 기업들이 ‘ESG 충격’을 피하려면 발 빠르게 경영 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