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성용 단국대 교수
천성용 단국대 교수
천성용 단국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육아는 오랜 기간 엄마들의 몫이었다. 2021년 현재, 우리 사회의 육아에 대한 인식은 과거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많은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 동참하고, 심지어 아이를 위해 장기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아빠들의 모습도 보곤 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KBS 홈페이지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KBS 홈페이지
이런 변화에 TV 예능 프로그램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던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엄마 없이 ‘아빠’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엄마 없는 하루를 육아 초보인 아빠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갓난 아기를 돌본다. 이때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들은 주말 저녁 온 국민을 즐겁게 만들고, 때로는 예기치 않았던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마케팅에서 활용되는 ‘프레이밍 효과’를 적용하면 이 현상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프레이밍 효과란 우리가 어떤 ‘심리적 창’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 같은 대상도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전의 우리 사회는 ‘육아=엄마의 몫’이라는 심리적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반복적인 예능 프로그램 학습으로 인해 이제 ‘육아=아빠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심리적 창문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어떤 멋진 연예인은 3명의 남자 쌍둥이를 너무나 능숙하게 잘 돌본다. 과거 아빠들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고, TV에 등장하는 이 연예인은 이 시대의 새로운 아빠, 멋있는 아빠로 비춰진다. 육아는 아빠도 할 수 있는 것 정도가 아니라 ‘육아를 잘하는 남자가 멋있는 남편, 좋은 아빠’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꾼다.

프레이밍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단지 TV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적절한 프레이밍이 우리 도시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에 적절한 예로 뉴욕의 ‘더 라이드(The Ride)’라는 버스 투어 공연이 있다.
뉴욕 더 라이드/사진=더 라이드 홈페이지(www.experiencetheride.com)
뉴욕 더 라이드/사진=더 라이드 홈페이지(www.experiencetheride.com)
필자가 2018년 미국에서 연구년으로 근무할 때 뉴욕 맨해튼에 관광 온 지인들에게 자주 추천했던 공연이 바로 더 라이드(The Ride)이다.

이 공연은 모든 점에서 특별하다. 일단 공연장이 도시 자체이다. 관객들은 맨해튼 42번가와 8번 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잘 알려졌다시피 맨해튼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중 하나이다. 주말에 맨해튼에서 운전을 하려면 엄청난 교통체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럴만한 것이 맨해튼은 뉴욕의 중심이자 미국의 중심 지역으로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공간이다. 또한, 각종 미술관과 공연, 공원, 맛집 등으로 미국 사람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복잡한 교통은 분명 맨해튼의 큰 단점이다. 차가 막히는 도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엄청난 교통체증에 짜증이 난 뉴욕 드라이버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시골의 친절한 미국인과는 많이 다르다.

운전할 때 조금만 틈을 주면 끼어 들고, 혹시라도 출발이 늦으면 즉각 요란한 클랙슨이 울린다. 필자가 처음 맨해튼 운전을 했을 때 조금 늑장을 부리자 바로 손가락 욕을 날리며 환영하던 뉴요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더 라이드 공연은 도시의 교통체증이라는 이 부정적 시각을 오히려 새로운 공연의 기회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었다.
뉴욕 더 라이드/사진=더 라이드 홈페이지(www.experiencetheride.com)
뉴욕 더 라이드/사진=더 라이드 홈페이지(www.experiencetheride.com)
더 라이드 공연은 이렇게 진행된다. 출발한 버스에 탄 관객들은 한쪽 옆면이 모두 통유리로 장식된 버스 좌석에 앉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도시의 전경은 공연장으로 탈바꿈하고, 버스가 정차하는 순간마다 버스 밖의 공연자가 미리 약속된 공연을 펼친다.

공연자는 버스 안에 탑승한 진행자와 마이크로 서로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하고, 노래, 코미디, 스트리트 댄스, 발레, 신년 카운트다운까지 각종 짧은 공연을 펼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공연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뉴욕의 심각한 교통 체증 덕분이다. 만약 버스가 정차할 시간도 없이 잘 뚫린 길이라면 오히려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없다. 맨해튼의 꽉 막힌 도로 특징 덕분에 교차로에 1~2분 이상 정차할 때가 비일비재하고, 이 순간마다 기다렸다는듯이 창밖에 공연자가 등장한다.

교통체증 때문에 매번 적절한 공연의 여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차가 출발할 때쯤 되면 짧은 공연은 때맞춰 적절히 끝난다. 관객들은 나도 모르게 다음 번 교통 정체를 기다리게 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공연자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불쑥 나타날지 기대한다.

버스 안에는 계속 화려한 음악과 댄스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버스 안의 공연 진행자가 끊임없이 관객의 흥을 돋우고, 흥분한 관객들은 함께 춤을 추며 마음껏 공연을 즐긴다. 도시의 단점이 도시의 장점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물론, 공연이 끝나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관객들은 맨해튼의 교통체증과 다시 만나야 한다. 하지만, 공연 순간만큼은 교통체증을 즐기던 자신의 모습에 놀라웠을 것이다. 앞으로 맨해튼의 교통체증이 심할 때면 또다시 짜증이 나겠지만, 가끔은 더 라이드 공연이 떠오를 것이고, 지나가는 라이드 공연 버스에 손을 흔들어 줄 수도 있다.

실제로 공연을 보는 동안 거리를 걷던 수많은 시민들이 밖에서는 전혀 들리지도 않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마도 이전에 더 라이드 공연을 본적이 있는 관객들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처럼 프레이밍 효과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오래된 인식, 그리고 우리 도시의 모습까지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노력한다고 항상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때 더 라이드 공연처럼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단점을 장점으로 탈바꿈하는 전략을 선택해보면 어떨까?

단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보이도록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어 바라보게 만드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처럼 마케팅 전략을 잘 활용하면 기업의 수익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면 어쩌면 우리 주변의 지겹고 따분한 일상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