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 안되면 올해 가계대출 증가세 이어질 것"
"올해도 신용대출 규제 기조 유지"…연합뉴스 5대 금융그룹회장 인터뷰

은행팀 = 한국 금융계를 주도하는 5대 금융그룹 회장들은 대체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라 피해 기업에 대한 이자 유예 등 금융지원도 '선별적'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사상 최대 폭으로 불어난 가계대출은 급증의 가장 큰 요인인 주택·전셋값이 안정되지 않는 한 올해에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자금 유입 억제와 대출 부실 관리 등의 차원에서 금융 그룹들은 올해도 작년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신용대출 조이기'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다.

금융그룹회장들 "이자유예 등 기업지원, 선별적 방식 전환 필요"
◇ "일시적 유동성 부족과 무관한 한계기업은 구조조정 필요"
연합뉴스가 3일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금융그룹 회장을 상대로 신년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에 대한 금융 지원은 계속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구조적 부실과 한계가 우려되는 기업·업종의 경우, 대출 만기 연장·이자 유예 등 일괄적 지원보다는 별도의 '맞춤형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는 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겪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영난 해소를 위한 조치이므로 코로나19 장기화와 함께 해당 조치 연장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부실 예상 기업을 제외한 '정상기업' 중심의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시적 유동성 부족 여부와 관계없이 한계기업의 이자 납입만 늦춰줌으로써 부실이 일시에 발생할 위험이 있고, 현재 이자 납입 유예 중인 기업 입장에서도 추가 연장은 향후 상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자 상환 유예 등의 지원 프로그램은 유지하되, 기존 유예 기업과 한계 기업에 대해서는 추가 연장보다는 은행별 또는 은행권 공동의 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정상화를 돕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도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기업과 소상공인이 늘어나면 국민경제·금융안정에 장기간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금융 지원 재연장 논의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상환 유예 제도의 취지에 맞춰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인지, 구조적 경영난으로 회복이 어려운 기업인지 판단해 맞춤형, 세분화 금융 대책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병환 NH농협금융그룹 회장 역시 "농혐금융지주는 실물경제 충격과 금융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가 연장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단기적 매출 감소가 신용등급 하락과 유동성 위기로 번지지 않게 하되, 회생이 어려운 한계기업 등에는 선별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코로나19가 예상보다 길어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만큼 실물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고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만기 추가 연장과 이자 유예 필요성에 공감하나, 향후 건전성 악화 등으로 금융권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최적의 연착륙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필요한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 각종 금융지원 등에 협조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은행권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의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작년 9월 말까지 중기·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만기와 이자 상환을 연장·유예했다가, 연장·유예 기한을 올해 3월 말까지 한 차례 더 미뤄준 상태다.

하지만 그 이후로의 일괄적 추가 연장에 대해서는 벌써 대출 건전성 관리 등의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신용대출 증가폭 줄어도 주택·전세자금 증가세 이어질 듯"
금융그룹 회장들은 지난해 가계대출 폭증의 주요 원인으로 주택·전세 가격 상승에 따른 자금 수요를 꼽으면서, 올해 역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가계대출 증가 추세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작년 가계대출은 2019년보다 121조원, 약 8% 늘어 상당히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며 "이런 가계부채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최근 수년간 주택가격 급등으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1년 가계대출 추세도 결국 주택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있다"며 "높은 주택가격의 부담과 정부 대책으로 작년 8월 이후 주택 거래량이 다소 감소했지만, 올해 주택 거래량이 다시 늘어날 경우 가계부채 역시 일정 부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가계부채 급증의 요인으로 ▲ 작년 11월 13일 금융당국 가계대출 규제 발표 이후 가(假)수요 ▲ 주택자금 수요 ▲ 경기 하락에 따른 생활자금 등 대출 수요 등을 지목했다.

그는 "올해 금융 당국에서 '가계부채 관리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차주(돈 빌리는 사람) 상환 능력에 맞춰 가계대출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신용대출 증가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택 구입·전세 자금과 서민 금융대출 등 실수요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저금리 환경 속에서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 매매 증가, 전셋값 급등에 따른 전세자금 대출 증가, 주식투자 등을 위한 가계 신용대출 증가, 코로나19 타격 관련 대출 증가 등 때문"이라며 "작년 4분기부터 시작된 금융기관들의 보수적 신용대출 정책 기조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올해 신용대출 증가세는 둔화하겠지만, 전반적 가계대출 수요는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이 늘고 전세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전세자금 대출도 증가했다.

여기에 코로나19 관련 생계자금 수요와 투자 목적의 신용대출까지 더해져 전체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불었다"며 "올해의 경우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주택 구매가 유보될 가능성이 있고, 신용대출도 작년 11월 도입된 규제로 올해만큼 급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생활안정 자금 실수요 증가, 전셋값 상승, 공모주 청약 투자 수요 등 가계대출 증가 요인이 상존하는 만큼 대출 추이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그룹회장들 "이자유예 등 기업지원, 선별적 방식 전환 필요"
◇ "현재의 가계대출 자율 규제 수준 유지…서민 대출은 지장 없도록"
아울러 금융그룹 계열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전반적으로 가계대출 규제 기조를 유지하고, 특히 신용대출을 계속 조일 방침이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작년 4분기부터 우리은행은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자율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신용대출 주요 상품의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통장식 상환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의 최고 한도를 1억원으로 줄였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시행된 정부 신용대출 규제에 따라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제한, 고액 신용대출 사후 관리 등도 강화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새해에도 현재의 자율 규제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 아래, 경기 침체에 따른 연체율 상승과 시장금리 상승 등 불안 요소를 고려해 하나은행은 리스크(위험) 관리 목적으로 가계대출에 대한 적정 수준의 규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2021년에도 당국의 주택시장 안정화,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유지되고 DSR 중심의 심사 체계도 강화되면서 고신용·소득자의 거액 신용대출에 대한 취급 기준이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손병환 NH농협금융그룹은 "지난해 규제 효과로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진정됐지만, 아직 증가세가 꺾였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다"며 "올해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완화는 가계부채 증가폭이 명확히 둔화될 때 가능할 것이고, 농협은행의 가계대출 기조도 당국 규제 완화 시점과 연계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5대 금융그룹 회장들은 공통적으로 가계대출 규제 기조 속에서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 소상공인 등이 생활자금과 운영자금 등 실수요 대출을 받는 데는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