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 원전 폐기? 대선 끝나고"…공무원들, 후환 두려웠나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내년 2월 전면 백지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던 신한울 3·4호기의 생명이 연장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신한울 3·4호기 폐기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발전 허가 연장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어서다.

발전 허가가 연장되면 신한울 3·4호기는 죽지도 살지도 않는 현 상황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다음 대선이 있는 2022년까지는 그대로 연명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혐의’ 수사를 본격화하자 부담을 느낀 행정부가 정치권에 결정 책임을 넘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수원, 산업부에 “허가 연장해달라”

3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신한울 3·4호기의 발전사업 허가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산업부에 구두로 요청했다. 한수원은 오는 1월 중 공식 문서로 이를 다시 요청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발전사업 허가 연장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17년 10월‘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할 때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건설부지 지정을 철회하는 등 취소를 못박은 삼척 대진원전·영덕 천지원전전과 달리 신한울 3·4호기에 대해선 별다른 행정조치를 하지 않고 보류 상태로 놔뒀다. 한수원이 2017년 신한울 3·4호기의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뒤 7900억 원을 투입해 건설 작업에 착수했는데, 이를 억지로 취소했다가는 추후 법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선택한 건 ‘지연 작전’이었다. 한수원이 본격적으로 원전 건설에 착수하려면 미리 받아놓은 발전사업 허가 외에도 공사계획 인가를 새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를 신청하지 않았다. 원전학계 관계자는 “전기사업법상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뒤 4년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공사계획 인가를 받지 못하면 정부가 허가를 아예 취소할 수 있게 된다”며 “신한울 3·4호기는 그 시기가 내년 2월 26일인데, 정부가 이때까지 기다려 명분을 얻은 뒤 건설을 전면 백지화하려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월성 1호기 트라우마’ 작용한 듯

건설이 백지화되면 산업부와 한수원이 수천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 두산중공업이 한수원 발주를 받아 5000억원 상당의 기기를 사전 제작해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수원은 2017년 이후 별도의 행정조치를 미뤄 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때까지 관가에서는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다소 손해가 발생해도 큰 문제는 없다는 분위기였다”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정책이기도 하고, 이로 인해 공무원들이 문책당하는 일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탈원전 관련 검찰 수사로 산업부와 원전 업무에 국민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법·절차상 흠결이 있거나 손실을 유발하는 결정을 함부로 내리기가 어려워졌다. 산업부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과 관련해 현직 공무원들이 구속수사를 받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 2월 신한울 3·4호기의 허가를 취소하려면 ‘한수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인가를 안 받았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며 “그런데 신한울 3·4호기 중단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한수원 입장에서는 인가를 받지 못할 타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 허가가 취소되면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수원의 향후 신재생발전 등 다른 신규 발전 사업까지 막힐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산업부는 발전사업 허가를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의 책임소재 등 법적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가는 추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업부는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꺼리고 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철저한 법률 검토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