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 서두르다 부작용 속출하자
정부, 지원금 지급→삭감 '반복'
"막대한 혈세 낭비" 지적

정책 믿고 투자한 中企 '고사 위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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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설익은 태양광·풍력 보급 정책을 시행했다가 부작용이 속출하자 이를 거둬들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낭비된 혈세 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한 태양광발전소에 주는 보조금을 내년부터 대폭 삭감키로 한 게 단적인 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신규로 ESS를 설치하는 태양광발전소에 부여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는 현행 4.0에서 ‘0’으로 하향 조정된다. REC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에 주는 일종의 정책 보조금이다. 가중치가 높을수록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다.

ESS를 설치한 발전소는 낮에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저장했다가 밤에 쓰거나 판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017년부터 정부는 태양광발전소에 딸린 ESS 사용량에 비례해 최고 수준의 보조금(REC 가중치 5.0)을 줬다. ESS를 잘 활용하면 전기 생산이 들쭉날쭉한 태양광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제도가 잘못 설계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곧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태양광 발전용량의 3~5배에 달하는 ESS를 설치하는 발전소가 우후죽순 들어섰던 것이다. 사업자로선 태양광·풍력 전력을 최대한 많이 ESS에 저장할수록 지원금을 더 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비효율을 조장한 셈이다.

이런 문제점이 드러나자 산업부는 올 7월 REC 가중치를 5.0에서 4.0으로 한 차례 낮췄다. 내년부터는 아예 가중치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에너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ESS의 총 용량은 지난 8월 말 기준 7.1GW가량이다. 지난해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15.8GW)의 절반에 육박한다. 제도 악용 사례가 발생하면서 ESS에 과잉 투자가 일어난 상태라는 설명이다.

2015년 이후 ESS 관련 보조금 지출액은 7157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세부적으로는 설치보조금(195억원), 한전의 전기료 특례할인(4822억원), REC 보조금(2140억원) 등이다.

윤 의원은 “정부는 이처럼 대규모 보조금이 지출되는 과정에서 낭비된 세금이 얼마인지조차 집계하지 않고 있다”며 “최소 수천억원이 보조금을 노린 태양광 사업자들에게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갑자기 ESS 보조금을 삭감하기로 한 것을 두고서도 비판이 나온다. ESS 분야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급격히 보조금을 줄이면서 많은 비용을 투자한 중소기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며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보조금을 낮췄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윤 의원은 “ESS 외에도 정부는 산지 태양광, 버섯·축사 태양광 등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보급 정책을 서둘러 시행했다가 막대한 혈세를 낭비한 사례가 있다”며 “설익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을 추진하다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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