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가 원청업체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서서 내년 이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 박수근)가 지난 18일 전국 13개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과의 회의에서 내놓은 ‘노동위원회 발전방안’에 담긴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중노위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전문성 강화, 서비스 기능 확대, 공정성 제고 등 해마다 반복해 온 의례적인 내용에 묻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노동委, '원청업체의 사용자 책임' 확대하나
노동위원회가 올해 발표한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도 많다. 노동위원회 운영 기조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 방향과도 맥이 같다.

먼저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리 구제를 확대하겠다”며 특정 업종까지 거론하고 나선 것이 눈에 띈다. “카마스터, 택배노조와 관련해서는 이들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노동위원회 판정이 법원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며 특고, 파견, 하청 노동자 등이 노동관계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법리를 법원, 학회 등과 협업해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노동委, '원청업체의 사용자 책임' 확대하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직권조사도 강화한다. 법원과 달리 노동위원회는 사실관계에 대한 자료를 직접 조사할 권한이 있는데도 기업이 가진 인사, 평가 자료에 대해 직권 조사한 사례가 저조하다는 게 노동위원회 분석이다. 앞으로 필요한 때에는 공익위원까지 동행해 현장 조사까지 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위원회의 자료제출 요구에 불응하는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노동위원회법에 규정돼 있다.

다양한 집단적 노동 분쟁에 대한 조정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대목에서는 원청업체의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원청사가) 하도급사 조정회의에 참여하는 사례 확산을 추진한다”며 “2020년 중노위가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범위에 대한 판단기준’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밖에 ‘공익위원·조사관의 전문성 강화’, ‘코로나19 관련 노동분쟁 대응 강화’ 등의 방침도 밝혔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위원회 처리 사건의 95% 이상이 법원에 가지 않고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종결되고, 심판사건도 평균 56일 만에 처리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법원이 노동법원 설립 방침을 밝힌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동위원회 발전방안은 정부의 친노동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한다. 예술인에 이어 특고, 플랫폼 종사자까지 고용·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는 데 이어 내년에 플랫폼 종사자 보호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까지 정부는 내놓고 있다. 이런 마당에 내년이면 당장 금속노조를 비롯한 산별노조에서는 하청업체 노사협의에 원청사를 대상으로 조정신청을 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지난 5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에 소속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조들이 원청사인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9개사를 대상으로 조정신청을 했다. 6월 1일 중노위는 원청업체가 직접적인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원칙은 재확인해 조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년엔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업체 노조의 교섭요구 더 늘어날 듯

그렇지만 행정지도 결정을 내리면서 중노위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덧붙였다. “원청업체는 하도급 근로자의 안전보건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업장 상황에 맞게 하도급 사용자들과 공동 노력하라”는 권고 문구가 들어갔고 경영계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중노위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이번 ‘노동위원회 발전방안’에서 다시 밝히고 나서면서 내년 이후 노동계 반응이 주목된다. 금속노조를 비롯해 제조, 보건 업종이나 공공부문 등에서 원청사를 대상으로 한 사내하청 노조의 단체 교섭 요구와 노동쟁의 조정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