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순 카길한국 대표, 축산농가 찾아다니며 경영컨설팅 해준 '숫자의 달인'
'牛步萬里(우보만리)' 샐러리맨 정신으로
사료 매출 1조 쌓다
박용순 카길애그리퓨리나(한국법인) 대표는 그만한 성과로 화답했다. 그는 대표 취임 2년 만에 매출 1조원 기록을 달성했다. 카길이 한국에 진출한 지 53년 만의 일이다.
‘우보만리’ 정신이 이룬 신화
박 대표는 축산업이 겨우 산업화의 길목에 접어들기 시작한 1993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나의 뿌리, 나의 생활은 늘 축산업에 가까이 있었다”고 말한다.“어린 시절 소와 돼지 몇 마리를 키우는 집에서 자랐어요. 남는 시간엔 송아지 여물 뜯어다 먹이고, 돼지 기르는 재미를 알았지요. 축산업에 대한 동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렇게 서울대 축산과를 간 뒤 카길에 합류했습니다.”
카길애그리퓨리나는 카길의 자회사이자 한국법인이다. 1967년 한국에 진출했다. 사료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한다. 평택, 군산, 정읍, 김해 등 4개 공장에서 ‘퓨리나’ ‘뉴트리나’ 등의 브랜드로 700여 종이 넘는 축산 배합사료를 만든다. 이 같은 축산 사료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산다는 건 고된 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농가들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주거지를 옮겨 다녀야 한다. 각종 질병이나 사고가 터지면 농가는 가장 먼저 사료회사에 자문한다. 구제역 등의 전염병이 발생하면 24시간 비상대기 체계를 가동한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시장’이라는 것이 영업사원에겐 가장 큰 벽이다. 지금은 2500마리씩 키우는 돼지 농가가 많지만 1990년대 후반까진 100~150마리를 키우는 소농들이 많았다. 소와 돼지를 막론하고 ‘한 번 먹이던 사료는 잘 안 바꾸는’ 성향을 갖고 있다.
우직한 농가 움직인 비결은 ‘숫자’
보수적인 사료시장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였다. ‘숫자로 말하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축산업은 고도성장기였습니다. ‘만들기만 하면 다 팔리는’ 시장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는 축산 사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밀병기가 필요한 때였어요.”그는 ‘돼지 몸무게 내기’를 생각해냈다. 돼지 농가를 찾아가 “저놈 지금 몇 ㎏ 나갈 것 같냐. 예측한 뒤 직접 달아봅시다”는 제안을 했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그가 이겼다. 농가마다 경영에 관한 컨설팅도 해줬다. ‘지금 이때 이 사료를 더 먹여 건강하게 키운다면 올 연말 당신 통장에는 작년보다 정확히 30% 늘어난 금액이 찍혀 있을 것이다’ 등의 설득이었다.
“최신 기술, 영양의 뛰어난 점을 설명하는 건 어쩌면 공급자들의 생각입니다. 경쟁사들도 모두 그렇게 세일즈할 테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농가가 우리와 손잡았을 때 어떤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박 대표의 사무실에는 붓글씨로 쓴 ‘우보만리’가 크게 걸려 있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한 농장주가 보내 온 선물이었다. 이 농장주는 선물을 보내고 ‘우보천리’ 액자를 자기 농장에 걸어 다 같이 더 멀리 가자는 뜻을 전했다. 현재 카길의 사료를 쓰는 농장 중 10년이 넘은 장기고객 비중은 42%에 달한다.
축산업 발전 53년 이끈 카길
그는 카길의 평택공장 투자가 '한국 축산에 대한 자신감'이었다고 표현했다. 중국, 베트남, 남미 등 신흥국의 축산업은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그 동안 한국은 투자국으로서 예외로 여겨졌던 곳이다.“500여 명이 넘는 카길 한국 직원들의 실력, 현장 직원들과 농가 간 끈끈한 네트워크가 본사의 투자를 이끌어 낸 포인트였습니다.”
카길 한국이 일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국내 평창기술연구소와 평택 중앙실험실은 5개의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 13개 글로벌 연구실과 협력한다. 국내에서의 연구 결과는 ‘실험실에만 갇혀 있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영업과 마케팅, 연구 인력이 함께 움직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라는 박 대표의 생각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그는 조직관리 원칙으로 ‘두 날개론’을 소개했다. ‘위기의식’과 ‘가슴 뛰는 희망’이라는 두 가지가 항상 공존해야 기업도 개인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등 모든 임직원에게는 ‘프로정신’을 강조한다.
동물영양은 과학의 총집합
그는 사료산업이 과학의 총집합이라고 믿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세계적 재난을 거치며 축산과 사료산업은 더 중요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축산업은 여러 질병, 전염병과 싸우면서 이미 ‘비대면’이 오래전 시작됐습니다. 모든 농장과 농장주가 훈련이 돼 있지요. 앞으로는 분야를 막론하고 기업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릴 겁니다.”
박 대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식량 안보를 지키고,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식품을 만드는 근간에 동물 영양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2050년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됩니다. 동물성 단백질 수요는 지금보다 70% 더 늘어날 것이고요. 미래는 식량에 대한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기업으로서 카길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더 나은 단백질 공급을 하기 위한 혁신을 할 겁니다. 그 중심에 카길 한국과 전국 축산 농가가 있을 것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박용순 대표는…
△1987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학과 졸업
△2015년 서강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1993년 퓨리나코리아 입사
△2010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영업총괄 본부장
△2014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전략마케팅부 본부장
△2017년 카길 미국 본사 전략프로젝트 담당
△2018년 카길애그리퓨리나 대표이사
△2019년 카길 한국 총괄대표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