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그' 국내 계약 해지 통보

캡슐 없으면 머신 무용지물
재고 10년치 떠안은 쿠첸
조정원에 합의 중재 요청
[단독] 美 커피머신 업체 '일방 철수'…쿠첸 소비자 2만여명 피해

“큐리그 커피캡슐(사진)을 구입하러 들어왔는데 전량 품절로 나옵니다. 언제 재입고되나요.”

최근 미국 캡슐커피 브랜드 큐리그의 국내 공식 사이트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문의글이다. 이 사이트 운영사이자 큐리그의 국내 공급을 담당하는 생활가전기업 쿠첸도 혼란에 빠졌다. 쿠첸 관계자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큐리그로부터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큐리그의 커피머신과 커피캡슐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큐리그 브랜드 더 이상 쓰지 말라”
쿠첸이 큐리그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건 지난 6월이다. 8월 예정된 계약 만료를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쿠첸은 재계약을 위한 서류 작업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큐리그는 “더 이상 큐리그 브랜드를 쓰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이메일만 보내고, 몇 차례 협의를 진행하다 소통 창구를 차단했다는 게 쿠첸 측 설명이다.

큐리그는 미국 유명 캡슐커피 브랜드다. 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는 소비층이 두텁다. 쿠첸이 큐리그와 손잡은 건 2015년이다. 네스프레소, 돌체구스토 등의 톱 캡슐커피 브랜드가 국내 진출을 강화하던 시점이었다. 쿠첸 역시 캡슐커피사업을 하기 위해 큐리그 제품을 독점 수입하기로 하고 계약을 맺었다. 이후 큐리그 커피머신 및 전용 커피캡슐에 대한 국내 판매권을 얻었다. 쿠첸은 지난 5년간 약 2만 대의 큐리그 커피머신을 판매했다. 2만 대의 커피머신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커피캡슐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올 들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집에서 직접 음료를 만들어먹는 ‘홈카페’ 열풍이 불면서 캡슐커피 수요가 급증했다. 쿠첸은 올해를 기점으로 관련 사업이 호전될 것으로 판단했다. 당연히 계약도 연장할 계획이었다. 이에 지속적으로 큐리그와 협상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쿠첸은 “회사를 운영하며 처음 겪는 황당한 사건”이라고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쿠첸에 남은 큐리그 커피머신 재고 물량은 10년 이상 팔아야 하는 규모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소비자가 공식적으로 큐리그 커피캡슐을 구할 경로가 차단된 것이다. 쿠첸은 “쿠첸이 국내 유통을 담당하지 않아도 되니, 한국 소비자가 약 2년만이라도 더 커피캡슐을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쿠첸은 일부 남은 커피캡슐 판매로 소비자를 달래고 있다. 그나마도 곧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쿠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대거 불편함을 호소하고 나올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큐리그가 공급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쿠첸은 고민 끝에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요청을 넣어뒀다. 큐리그와 원만한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국제조정도 고려 중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생활가전업계에서는 큐리그가 쿠첸을 통해 국내 시장을 시험해보다가 원하는 실적이 나오지 않아 전면 철수를 결정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공급·판매 시장은 해외 업자들이 언제든 직접 들어오거나 빠지기 쉬운 구조”라며 “관련 업체와 소비자를 위한 체계적인 보호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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