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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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덕본 자유무역…경제적 번영에 국제평화까지 줬으나

가벼운(?) 퀴즈 하나는 만들어 본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음 4개국 가운데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최대 수혜국은 어디인가. 1.미국 2.중국 3.일본 4.한국. 정답은 있을까? 굳이 정답을 찾자면 통상과 교역, 국제간 투자 전문가들의 방대한 연구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도 각국이 두루 동의할 정답찾기는 힘들 것이다. WTO가 정식 출범한 1995년1월부터 따지는 방안이 있을 수 있고, WTO 전신의 GATT 및 UR(우루과이라운드)때부터 계산할 수도 있겠다. 상품교역만 볼 지, 서비스와 자본이동까지 포함해야 할지, 나라마다 경제구조에 따라 관점도 다양할 것이다.

일단 미국부터 보자. 자유로운 무역, 관세와 비관세 영역까지 개방과 자유무역으로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값싸면서 좋은 재화는 모두 수입해 썼다. ‘좋은 가격’으로 가성비 높은 상품을 모두 누리며 미국은 인플레 없이 소비활동을 누려왔다. 거꾸로 보면, 미국이라는 방대하고 매력 넘치는 시장 덕에 신생국들도 경제를 일으켰다. 한국이 앞서 그러했고, 중국이 가세했다.

일본은 어떤가. 2차 대전 패전국 일본은 어떻게 세계경제강국이 됐나. 자유로운 무역, 낮아진 국경, 걸림돌이 줄어든 투자제도, 거침없는 자본의 국제이동을 빼고 일본의 경제적 성취를 말할 수 있을까.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 무수한 전자제품을 어떻게 전 세계시장에 공급할 수 있었나. 전문가들이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 고유의 질 좋은 소재와 부품, 장비가 얼마나 해외로 나갔나. 수출로 치면 미국산도 많고도 많다. 헐리우드 영화부터 보잉 항공기, MS윈도우와 애플 아이폰, 구글·페이스북까지 결코 적지 않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소득 3만달러까지, 짧게 요약하면 말 그대로 수출의 힘이었다. 한국의 성장은 ‘개방 교역국’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당연히 WTO체제의 최고 우등생이자, 최대 수혜국 가운데 하나다. 지금도 수출이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고 좌우하는 실상 아킬레스 건이다. 세계 최강국이 된 메모리 반도체만이 아니다. 한국산 자동차 화학 전자제품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세금(관세) 없이, 까다로운 국경 검문 없이 구입했기에 우리는 이 정도 부(富)와 물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원쟁탈전’ 같은 전쟁도 없었으니, 국제적 평화도 결코 덤이 아니었다.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세계의 공장’이라는 평을 듣는가. 그 평가는 오래 가고 있다. 십 수억 인구가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던 중국은 어떻게 해서 장기간 고성장하게 됐나. 중국제품이 구석구석의 미국으로만 갔던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실려 나갔다. 미국 제품의 대명사처럼 된 애플의 아이폰도 조립으로 만들어지는 곳은 중국이다. 적어도 1995년 정식 발족 후 국경이 확 낮아진 자유무역, 공정교역의 WTO체제의 최대 수혜국은 중국일 수도 있다.

정말로 실력 있으면서 객관적·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전문가그룹이 4개국 가운데 GATT부터 WTO체제까지, 국경 낮아진 자유무역의 지구촌 시대 최대 수혜국이 어디인지 연구를 해주면 좋겠다. 가급적 계량화된 분석치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이라도 한 번 해봤으면 더욱 좋겠다. 아직도 종잡기 힘든 미국-중국 간 통상 분쟁의 해결에서도 도움 될 지 누가 알겠나.

◆中 ‘공급망 자립’ 전략...방어용인가, 장래 공격용인가

결코 가볍지가 않은 ‘WTO체제의 최대 수혜국’ 퀴즈를 생각하게 된 것은 엊그제 신화통신을 통해 나온 중국의 중장기 발전전략에 들어 있는 내용 때문이다. 2021~2035년의 ‘15차 5개년 계획’의 실행안인데, 내년도 8대 경제 목표가 주목된다. 한경의 베이징 특파원은 이 발표에 대한 소식을 크게 전하면서 “미국의 중국 봉쇄를 정면 돌파하면서 중국 스스로의 ‘공급망 자립’에 승부를 거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신문 12월21일자 A13면 상세 기사)

중국의 이 전략을 접하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자유무역의 퇴조 조짐이다. 굳이 어디 누구 책임이라기도 힘든, 국제 분업과 글로벌 가치 체인의 퇴보다. 중국의 자립 행보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과정에 재현된 ‘미국 우선주의’ 기류와 따로 볼 수 없다. 어떻거나 중국의 ‘공급망 자립’ 전략은 복잡하고 다원적 관점에서 봐야할 사안이다. 지구촌 전체를 승자로 만들고 풍요의 신기원을 열어준 개방과 자유무역의 퇴조는 ‘마이너스 섬’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플러스 섬’은커녕 ‘제로 섬’도 못 되는….

그만큼 한국에 미칠 영향과 파장도 복합적일 것이다. 특히 일본과 비생산적이고 과거지향적인 과거사 문제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교역 갈등을 겪으며 크게 긴장했던 처지에서는 이런 기류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물론 코로나 쇼크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탓만 하기에는 복잡다단한 요인이 작용했고 나타나는 양상도 복합적이다. 어디서나 저급한 정치, 국내에서 지지기반만 보고 표계산이 앞서는 포퓰리즘 접근법이 보다 큰 문제일 것이다. 국경의 벽을 높이고, 어렵게 낮춘 관세장벽을 비관세 부분을 통해 묘하게 올리는 식의 국수주의적 퇴행은 세계인 전체에 마이너스 전략이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치체계 균열 가능성에 한국은 대비하고 있나

‘개방 교역국’을 지향하면서 발전해온 한국으로서는 정말로 경계의 대상이다. 그런데 정부도 거대여당의 국회에도 이에 대한 대응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역량으로 이 기류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기민하게 대응하기라도 해야 하는 데 엉성하기 짝이 없는 ‘백신확보 외교’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백신 확보 문제만이 아니다. 식량과 에너지, 기본 원자재 같은 게 모두 다 그렇다. 툭하면 나오는 글로벌 식량위기론에 걱정하지 않을 수 있나. 호기있게 외친 ‘탈원전’ 이후 천연가스는 마음 놓을 정도로 물량의 장기확보는 확실한가.

글로벌 분업체계, 공급망이 어느 날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구축돼 왔을 수 있지만 크게 흔들리는 조짐이 있다. 그래서 중국의 ‘공급망 자립’은 방어용 전략일까, 아니면 장래의 공격용 전략일까. 한국은 이런 전략이 가능할까. 단순히 ‘시장규모’나 ‘비교우위’ 차원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보는 역량과 냉엄한 국제질서에서 국가적 생존역량에서 거듭 자문하게 된다. (최근 한국 정부로부터 큰 수교훈장을 받은 추궈홍 전 대사 시절 주한중국대사관에서의 몇 차례 언론간담회 내용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른바 ‘사드 보복’ 등과 관련, ‘WTO수혜국, 중국’ 아젠다로 나눈 흥미로운 담론이 있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