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덮친 '골판지 대란'

폐지수입 줄고 골판지공장 화재…
공급 부족에 상자값 25% 급등
수출일정 미루는 업체 속출

뒤늦게 대책 마련 나선 산업부
골판지·제지업계와 수급문제 논의
골판지 상자 공급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중소 수출업체의 포장박스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 광명의 한 재생업체에서 골판지 상자 원지의 원료인 폐지를 분류하고 있다.  /뉴스1

골판지 상자 공급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중소 수출업체의 포장박스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 광명의 한 재생업체에서 골판지 상자 원지의 원료인 폐지를 분류하고 있다. /뉴스1

생활가전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최근 골판지 상자를 구하지 못해 수출에 차질을 빚었다. 수출할 제품은 있는데 이를 포장할 상자가 없어 수출 일정을 미뤘다. 이 회사 대표는 “상자가 없어 수출 스케줄이 꼬이는 건 창사 10여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스 대란’의 불똥이 중소 수출업체로 튀고 있다.

▶본지 11월 30일자 A2면 참조

골판지 상자 원지의 원료인 폐지 수입에 제동이 걸린 데 이어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대양제지와 골판지 회사 신안피앤씨가 지난 10월과 11월 각각 화재를 겪으면서 골판지 상자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포장용 상자를 구하지 못해 수출을 늦추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발 구르는 중소 수출업체
중소기업 "포장 박스 없어 수출 못할 판" 아우성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B사 역시 최근 포장용 상자 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대상으로 수출 스케줄이 잡힌 상태였지만 필요한 만큼의 포장용 상자를 못 구해 일부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품 특성상 박스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포장용 상자를 제때 구하지 못하면 수출 계획 자체가 뒤틀려버린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골판지 상자의 수요와 공급 간 심각한 불균형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택배 수요가 늘면서 시장에선 골판지 상자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반면 골판지업계는 원지를 만드는 폐지 수입이 어려워진 데다 연이은 공장 화재로 상자 출하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자연히 가격도 뛰었다. 먼저 골판지 원지 가격이 20%가량 올랐다. 이어 골판지업계가 최근 월 3만3000t의 공급 차질을 호소하며 상자 가격을 인상했다. 골판지 시장은 골판지 원료인 원지를 비롯해 골판지 겉면 및 구불구불한 골심지 등을 생산하는 골판지 원단, 골판지 박스 등 세 단계 생산 과정별로 구성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선 20~25%가량 골판지 상자 가격이 뛴 상태”라고 전했다.

가격 인상에도 여전히 골판지 상자 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한 골판지 원지 및 제품 생산업체 관계자는 “새벽부터 각종 업체들이 회사 앞에 트럭을 대기시켰다가 상자를 가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중소 수출업체 관계자는 “연간 계약을 맺을 정도로 수요 물량이 큰 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작은 업체들은 직접 뛰어다니며 포장용 상자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골판지조합, 산업부·제지업계와 논의
급기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골판지업체들이 속한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과 제지연합회, 제지공업협동조합은 산업부 관계자와 함께 16일 제지연합회에서 골판지 수급 문제를 논의했다. 앞서 골판지협동조합은 골판지 수급 문제를 해소해달라며 산업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골판지협동조합 관계자는 “상자를 무분별하게 쓰는 시장의 가수요를 줄이는 방안, 제지업계를 대상으로 골판지 원단에 쓰이는 골심지 등의 수출 자제를 요청하는 방안 등을 건의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골판지 수급 대란이 다음달 중순까지는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통상 설날(2월 12일)을 한 달 앞둔 시점부터 택배 물량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는 “골판지의 수급 불균형이 더 심각해지면 설 시즌을 앞두고 물류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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