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한발 늦어도 실력 다져가는 '호시우보 경영'

무역업체 부도 후 재도전
애견용품 수출업, 확장에 한계
"글로벌 의류 엄청난 기회 온다"
美월마트에 납품하며 사업 키워
그룹 올해 매출 3조원 육박
일러스트= 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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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가 직접 찍은 배우 송혜교의 포스터 사진이 눈길을 끈다. 송씨를 보이시하고 진취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김 회장은 “패션은 사진을 잘 찍어야 하는데, 그걸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 구매했다”며 “이런 일도 하나의 학습이고 공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기엔 김 회장의 ‘학습 경영’ 철학이 배어 있다. 학습은 일 잘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습관이며 성공의 필수 요소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학습은 단순히 배우는 게 아니라 익히고 쓰는 과정이다. 그는 사업도 충분한 학습과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믿는다.

작은 섬유공장에서 출발한 한세실업이 글로벌 패션기업과 협업하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로 성장한 데 이어 온라인 도서몰인 예스24를 인수해 안정적인 중견 지주사로 자리잡은 배경엔 김 회장의 이 같은 확고한 경영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무역 사업가가 된 ‘모범생’
김 회장은 스스로를 ‘모범생’이라고 소개한다. 어려서부터 가장 쉬운 일도, 잘하는 일도 공부였다는 설명이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그가 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김 회장도 한때 물리학도를 꿈꿨다.

전환점을 맞이한 건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무역업을 하던 삼촌 영향을 받아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 1970년대 초반은 한창 창업붐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수출 확대를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 신규 무역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었다.

1972년 한세통상이라는 무역업체를 세웠다. 첫 수출제품은 애견용품이었다. 개껌이나 애견 놀이용품 같은 상품을 미국 마트에 넘겼다. 5년에 걸쳐 사업을 이어갔지만 제품이 한정적이다 보니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1979년 한세통상은 부도 처리됐다.

김 회장은 회사를 정리한 뒤 미국 시장을 면밀하게 다시 조사했다. 그 결과 앞으로 글로벌 의류 시장이 기대 이상으로 커질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김 회장은 1982년 섬유전문기업인 한세실업을 창업해 재도약에 나섰다.
‘한 걸음 늦게’
새 출발을 시작하면서 김 회장은 ‘한 걸음 늦게 가자’고 다짐했다.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좋으니 실력을 다지는 게 우선이라고 믿었다. 호랑이 눈으로 보고 조사한 뒤 행보는 소처럼 신중하게 하는 호시우보(虎視牛步) 자세로 사업하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경기 부천에 작은 의류공장을 세우고 ODM·OEM 사업에 나섰다. 유통처를 확보하기 위해 한세통상 시절 거래하던 미국 K마트 등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한세통상을 좋게 기억하던 유통업계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들 중 일부는 한세통상 부도 당시 “괜찮냐”고 물으며 편지나 선물을 보내올 정도로 김 회장과 돈독한 사이였다.

김 회장은 “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꼼꼼하고 시장조사가 철저한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는 제대로 각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K마트와 월마트를 시작으로 납품을 시작한 한세실업은 이후 ‘한 번 거래하면 오래가는 파트너’로 미국 현지에서 인지도를 쌓았다.

한세실업을 다른 업체에 소개해주는 현지 유통업계 관계자가 늘었다. 거래처도 유통사에서 패션업체로 확대됐다. 갭, 퓨마, H&M, 자라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세실업에 연락을 해왔다. 모두 현재 한세실업과 활발하게 거래 중이다.

한세의 생산 규모도 커졌다. 200명가량의 인력으로 돌아가던 부천 공장이 1988년 사이판 공장으로 확대됐다. 중미와 베트남에도 공장을 차렸다. 김 회장은 “해외에 공장을 둘 때마다 해당 국가의 관세와 인력수급 문제를 섬세하게 따졌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사이판 공장에서 생산한 물품을 미국으로 보낼 때는 별도의 관세가 붙지 않는다. 당시 생소한 지역이던 사이판이 한세실업의 첫 해외 공장지가 된 배경이다.

한세실업의 수출물량은 한 해 3억6000만 장에 달한다. 세계 6개국에서 18개 법인 및 5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세예스24홀딩스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2조7852억원이다.
전환점 된 예스24 인수
2003년 들어 한세실업은 하나의 변화를 맞는다. 당시 1위 인터넷서점으로 꼽히던 예스24를 인수한 것이다. 의류기업이 인터넷서점을 사들인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김 회장은 “철저하게 미래를 보고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

김 회장의 인수 결정은 사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었다. 그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여러 업종에 대해 시장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털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인지하고, 매물로 나온 예스24를 눈여겨봤다”고 했다.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많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터넷서점이 눈에 띄는 사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가능성을 간파했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사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인터넷서점은 그중 하나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철저한 시장조사의 결과였다. 그는 온라인 기반 사업을 갖고 있는 게 향후 득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회장의 확고한 의지 덕에 예스24 인수는 약 1주일 만에 성사됐다. 김 회장은 인수 후 예스24 대주주단이 남긴 당부를 대부분 이행했다. 그는 “종합 온라인몰이 되지 말고 문화상품과 콘텐츠를 파는 기업으로 남아달라는 얘기를 들었고, 이 방침을 지금도 유지 중”이라고 말했다.
“2023년 20억달러 수출 목표”
2009년 한세예스24홀딩스를 세우며 지주사 체제로 개편했다. 당시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세금 유예 등의 혜택을 줬다. 김 회장은 “정부의 뜻도 작용했지만, 지주사 체제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뒷받침됐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한세실업, 예스24, 한세엠케이 등 계열사 간 영역을 나눠 관련 기업끼리 상생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한세실업 및 관련 원단 기업은 생산업, 예스24와 동아출판은 문화·도서업, 한세엠케이와 한세드림은 패션업 위주로 유기적인 공생을 이어가고 있다.

학습을 기반으로 한 김 회장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미국에 세운 개인보호장비(PPE) 공장을 기반으로 현지 마스크 시장 공략을 시작했다. 내년에는 미얀마에 새로 완공한 1만6000㎡ 규모 공장을 거점 삼아 한세실업의 생산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무역업으로 시작한 만큼 한세예스24홀딩스의 방향성은 확고하다. 바로 수출이다. 미얀마 공장에서 생산한 한세실업 의류를 갖고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세드림·한세엠케이에서 만든 자체 의류를 들고 일본 등에서 입지를 넓힌다는 목표도 세웠다.

김 회장은 “2023년 20억달러(약 2조1740억원)의 수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2세들 강점 따져서"…金회장의 승계 철학
장남 예스24, 차남은 섬유, 막내딸엔 패션 부문 맡겨
지난 10월 섬유업계에서는 한세예스24홀딩스의 온라인 기업설명회(IR)가 화제가 됐다. 이 IR에선 김동녕 회장의 장남과 막내딸이 직접 등장해 기업의 미래전략을 소개했다. 전문적이며 깔끔한 IR은 투자자의 주목을 받았다.

‘자녀들의 강점을 따져 역할을 분배한다’는 게 김 회장의 승계철학이다. 한세예스24홀딩스 2세들은 철저하게 역할이 나뉘어 있다.

장남인 김석환 한세예스24홀딩스 부회장은 문화·도서사업, 차남인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은 섬유사업, 막내딸인 김지원 한세엠케이·한세드림 대표는 패션사업 경영을 한다.

김 회장은 “김석환 부회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신기술 관련 공부를 해 정보기술(IT)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그가 온라인서점인 예스24를 맡은 배경을 전했다. 김익환 부회장은 GS그룹에서 근무하며 유통업을 배운 뒤 미국 의류기업 아베크롬비에서 일했다.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섬유·유통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패션에 관심이 높은 김지원 대표는 패션사업 쪽에 배치했다.

한세예스24홀딩스의 2세 경영은 이제 시작이다. 김석환 부회장은 예스24를 통해 인공지능(AI) 및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신규 사업을 하고 있다. 예스24 자체의 몸집도 키울 계획이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예스24는 올해 회원 수 1800만 명을 달성한 뒤 내년 20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김익환 부회장은 한세실업을 통해 미국에서 마스크 생산업을 시작한다. 이와 함께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미 지역 내 한세실업 생산기지를 다변화해 늘어나는 거래처 수요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미얀마 공장도 60개 라인 설비를 확충해 내년부터 생산 규모를 3배로 키운다.

김지원 대표의 한세엠케이·한세드림은 일본 진출을 강화한다. 내년에 두 회사 모두 흑자전환을 이뤄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유통채널을 확대하고,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겨냥한 편집숍을 여는 동시에 자사 쇼핑몰인 아이스타일24를 개편한다.

■ 김동녕 회장은

1968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72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1982년 한세실업 설립
2003~2015년 예스24 대표
2008년~현재 한세예스24홀딩스 대표
2014년 섬유의날 은탑산업훈장 수훈
2016년~현재 한세엠케이 대표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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