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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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하는 대국민 연설을 했다. 대통령 연설은 흑백영상으로 제공됐다. 고화질 영상을 이용할수록 많은 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컬러 영상의 4분의 1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화면으로 생중계됐다는 설명이다. 인간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고 불가피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는 흡수 또는 제거해 실질적인 배출이 ‘0’이 되는 탄소중립 상태로 가자는 목표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와 제약조건은 다른 얘기다. 탄소중립에 찬성한다고 ‘디지털 탄소발자국’에 대한 경각심 환기를 위해 제공됐다는 흑백영상 시대로 되돌아가자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탄소중립 연설을 코로나로 지쳐가는 국민에 대한 위로로 시작했다. 기후위기가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가장 취약한 지역과 계층, 어려운 이들을 먼저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조업 비중이 높고, 철강·석유화학을 비롯해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많은 우리에게 쉽지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의 딜레마다. 코로나 충격 속에서 그래도 우리 경제를 이 정도로 버티게 한 원동력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란 소리를 듣는 그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만 떠올려도 한국은 더욱 지혜로운 접근, 더욱 현실적인 전략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삼아 능동적으로 혁신하며,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모든 국가가 그런 목표를 공유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자국 경제를 심대히 훼손하는 전략을 채택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미래의 문제와 현실의 문제는 할인율 자체가 다르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그 차이가 특히 심하다.

문 대통령은 세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1) 산업과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탄소중립’의 강력한 추진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주공급원 전환 및 재생에너지·수소·에너지IT 등 3대 에너지 신산업 육성, 2) 저탄소 유망 기업의 세계시장 선점 등 산업 생태계 조성 및 순환경제 활성화, 3) 지역 맞춤형 전략과 지역 녹색산업 육성을 통한 공정한 전환이다. 그러면서 정부 책임이 무겁다고 했다. 정부는 이 추상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책임이 무겁다고 하지만, 정작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기업이나 국민은 어떻겠는가?

문 대통령은 “정부가 과감히 투자하겠다” “정부가 기술개발을 확대하고 연구개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 “정부가 든든한 뒷받침이 되겠다” “‘탄소중립 친화적 재정 프로그램’을 구축하겠다” “녹색 금융과 펀드 활성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세금은 어디서 나오는지, 정부가 지원만 하면 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에 확고한 ‘탄소중립 사회’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했지만, 들고 나온 방향은 탄소중립조차 이념논리로 가겠다는 것인지 의구심만 잔뜩 생긴다. 지독한 정부 주도 발상이란 비판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일방적인 연설로 끝냈지만 국민과 기업은 던지고 싶은 질문이 너무 많다. 당장 “탄소중립이 먼저냐, 탈(脫)원전이 먼저냐”는 질문부터 나올 것이다. 탈원전을 전제로 2050년 발전부문이 탈탄소화로 가려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30~50% 정도가 아니라 80%로 가야 한다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전망이 있다. 수백조원을 더 투입돼도 달성할까 말까한 수준이다. 대통령이 연설에서 “탄소중립이란 보다 높은 상위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탈원전 로드맵도 조정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수긍하는 국민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탄소중립보다 탈원전에 집착하면서 모든 게 꼬이고 말았다는 것은, 그래도 말이 통한다는 환경단체들의 냉철한 지적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발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기술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대통령부터 기술편견을 버리고 기술중립으로 가는 게 맞을 것이다.

규제에 지칠대로 지친 산업계는 산업과 환경 간 소통 대책이 무엇이냐고 절박하게 물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산업발전과 함께 지속적인 증가추세였던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로 돌아섰고, 올해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의 경기하강, 코로나 이후의 경기침체 국면으로 인한 특수성을 간과한 발언이다. 2050 탄소중립이 가능하려면 앞으로 30년간 매년 10%씩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장 제조업 생산은 최대 44%, 고용은 최대 134만명 줄어들 것이란 게 산업연구원의 전망이다. 이 충격을 흡수할 방안은 있는가?

일반 국민이 던질 질문도 있다. “재생에너지도 좋고 수소도 좋고 에너지 신산업도 좋다. 전기료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처럼 정부 보조금으로 해결하는 식으로 가다간 재정이 파탄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재생에너지도 수소도 에너지 IT도 시장메커니즘으로 굴러갈 수 있어야 지속가능한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부분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전기료 인상이 없다는 말은 잘못됐다. 가격 조정기능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 발전 경쟁에서 멈춘 전력산업 구조개편도 하겠다. 판매 경쟁을 도입해 소비자 선택권도 확 넓히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은 저탄소 유망업체의 세계시장 선점을 말했지만, 지금처럼 보급 위주 정책으로 어떻게 국내 산업의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느냐는 질문도 나올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탄소 중립을 추진하면 독일·중국 등 외국 업체들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다. 산업이 경쟁력을 가져야 탄소중립으로 가는 보급비용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소재·부품·장비 자립을 강조하는 정부가 환경과 에너지산업의 외국산 의존을 방치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연출보다 강한 것은 솔직함이다. 대통령이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친환경 원단 넥타이를 매고, 책상 위에 현대 수소차 ‘넥쏘’ 모형과 풍력 발전기 모형을 갖다 놓고, 오후 9시 47분이란 지구 환경 위기 시각을 가리키는 탁상시계를 보여주고, 연설이 끝나면서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작사·작곡한 ‘더 늦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상영하면 뭐하는가. 지금 국민과 기업은 그런 걸 한가롭게 감상할 기분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탄소중립 선언에 대해 국민과 기업이 갖는 의문점에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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