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요구는 전폭 수용
해고자가 파업 주도할 수도
단협 유효기간 3년도 무력화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풀려
경영계 호소는 묵살
지난 8일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3시께까지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환노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용부는 지난 2년간 노사정이 합의해 만든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노조에 기울 대로 기운 기형적 노조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여당의 입법 독주에 정부 관계자들도 경악했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도 여당이 강행한 법안 그대로였다.
勞 요구만 반영, 경영계 요구는 묵살
정부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실업·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등을 골자로 한다. 대신 경영계의 우려를 감안해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시 사전 노사합의 △사업장 생산·주요 시설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함께 명시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경영계를 ‘배려’한 세 가지 조항은 국회에서 모두 삭제되거나 무력화됐다. 사실상 노동계 요구만을 수용하는 쪽으로 개정된 것이다.
우선 해고·실직자 등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한 규정이 삭제됐다. 당초 정부안에는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해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했으나 환노위 심사 과정에서 통째로 빠졌다. 극심한 노사 갈등 속에 해고된 자가 노조원이 돼 사업장을 활보하더라도 회사는 제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해고자가 회사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사측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라며 “출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산업안전 감독 등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간섭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안에 있던 ‘사업장 주요 시설 점거 금지’ 조항도 사라졌다. 노조가 쟁의행위 중에 사업장의 주요 시설을 점거해 영업을 방해하더라도 처벌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다만 ‘노조는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신설했으나, 해석하기에 따라 기준이 모호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협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겠다는 정부안도 후퇴했다. 당초 ‘단협 유효기간 상한 3년 연장’ 조항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사 합의로 정한다’고 바뀌었다. 사실상 노조가 요구하면 회사는 언제든지 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고자가 주도하는 파업 가능성도
앞으로는 기업별 노사 임금 협상 테이블에 해당 기업에서 해고된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된다. 노조로서는 협상과 투쟁에 능숙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전임자 역할을 맡길 수 있다. 노조의 임원 자격을 해당 사업장 종사자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경영계는 해고자가 주도하는 복직 투쟁, 파업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조법과 함께 공무원의 노조 가입기준 중 직급 제한(현행 6급 이하만 가능)을 폐지하고, 퇴직 공무원·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도 처리됐다.
반면 경영계가 요구했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처벌 등 사측의 대항권 관련 조항은 심사 과정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을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서나마 3개월(현행 1개월)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내년 중소기업(50~299인 사업장)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다.
경영계는 입법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조에 편향된 법안이 통과돼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다”며 “본회의 상정 등 추가 입법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성명을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 와중에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크게 늘고 있다. 실업급여의 보호를 받는 양질의 일자리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고용노동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고용행정 통계로 본 11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429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무려 39만4000명 급증했다. 지난 5월 이후 증가폭이 6개월째 지속 확대되다가 급기야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올해 1월(+37만5000명)보다도 더 많이 늘었다. 방과후 강사 등 돌봄서비스나 숙박음식점업 등 대면이 불가피한 서비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잇딴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고용보험 적용을 받는 일자리는 타격이 적은듯해 보인다. 하지만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올해 3~4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의 후폭풍이 가장 심했던 5월(+15만5000명)을 저점으로 6개월째 증가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6~7월에는 10만명 대 후반 증가폭을 보이며 소폭 증가세였다가 8월부터는 30만명대 안팎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희망일자리 등 공공일자리 사업을 일제히 재개한 시점과 때를 같이 한다. 이같은 내용은 업종별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에서도 정확히 드러난다.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서비스업에서만 41만1000명이 늘었다. 그 중에서도 공공일자리가 상당수 포함돼있는 공공행정업에서만 20만5000명이, 보건복지업에서 10만3000명이 증가했다. 특히 공공행정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4월 +2만7200명, 5월 +4만3200명, 6월 +5만600명, 7월 +4만3300명, 8월 +13만3000명, 9월 +18만1000명, 10월 +19만9000명으로 정부 일자리 사업 추진 경과와 흐름을 같이 한다. 반면 민간 일자리는 어떨까. 지난달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3만4000명이 줄었다. 역대 최대 감소폭을 보였던 7월(-6만5000명)에 비해서는 신차효과, 반도체 부품 수출 회복 등으로 감소폭이 줄었지만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숙박음식업의 경우 2만3000명이 줄어 월별 기준으로 사상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9월 기준 작년 117만8000명에서 올해 1만1000명으로 95% 이상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고용보험 통계가 노동시장 현실 반영 못하는 이유는연령별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달 50대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전년동월에 비해 12만8000명, 60세 이상은 24만9000명이 늘었다. 5060세대에서만 37만7000명이 늘어난 것으로, 전체 가입자 수 증가 규모와 맞먹는다. 반면 제조업 위주의 비교적 양질의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30대는 5만명이 줄었다.고용보험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상용직 중심의 통계라 일용직과 특수고용직 종사자, 자영업자의 일자리 상황이 반영되지 못하고, 고용보험 가입·상실 신고가 익월 15일까지 가능하도록 돼있어 통계에 반영되는 데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통계의 한계는 고용부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시장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추경관련 일자리 사업 증가 등의 영향이 적지 않다"며 "숙박음식업 등 대면이 불가피한 서비스업 현장의 고용 충격은 훨씬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지난 9일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그동안 으름장을 놓던 노동계는 정작 조용한 반면 정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서서 눈길을 끈다. 노동계에 편향된 입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은 9일 ‘환노위 노조법 개정안 해설자료’를 냈다.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에는 미흡하지만, 해고자·구직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동안은 해고자·구직자의 경우 산업별 노조에는 가입이 가능했지만 기업별 노조에는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다.민주노총은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이 당초 국회에 제출됐던 정부안에서 노동계에 불리한 이른바 ‘독소조항’이 빠졌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기업체 종사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는 정부안 제5조 제3항은 최종 개정안에서 통째로 빠졌다. 또 사업장 점거를 금지한 정부안 제42조도 마찬가지다.단체협약 유효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 것을 두고 민주노총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어차피 노사가 합의하여 결정”한다며 “단위 노조 위원장 임기가 2년이므로 단협 유효기간이 3년으로 연장되면 혼란이 발생하므로 적극적인 교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그 밖에 노조 전임자 관련 규정이나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해 민주노총은 이를 모두 삭제하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민주노총은 노조법 최종 개정안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분위기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 대해 민주노총이 ‘노동 개악’이라며 대립각을 세웠지만, 이는 단순 시위용이라는 노사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 들어맞는 형국이다. 지금은 양 노총 모두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노동 개악’이라며 성명서만 내고 이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만 매달려 있다.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4일 내놓은 노조법 개정안 설명자료가 눈길을 끈다. 해직자·구직자 등 종업원이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과 관련해 정부는 “해당 조문이 너무 복잡해 간소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례나 형법 규정도 있어서 해고자인 조합원이 사업장을 활보해도 회사가 제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양 노총, 노조법 얘기는 빼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주장만정작 민주노총의 판단을 들어보면 정부 입장이 무색해진다. 정부안에서 “비종사자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금지 조항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가 부활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심각한 독소조항”인데 이 조항이 최종 통과된 노조법안에서 빠진 것을 두고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정부안에 담겨있던 '사업장 점거 금지' 조항도 비슷한 상황이다. 노조법 최종안에서 이 조항이 삭제된 것을 놓고 정부는 “노·사의 오해가 있어 현행 조문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사업장 점거 금지 조항’도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조항이 최종 법안에서 삭제된 것은 ‘민주노총과 시민사회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뜻에 맞게 조문이 수정됐다는 의미다. 국회를 최종적으로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을 두고 양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더 이상 반대 투쟁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외국인 근로자의 재입국 제한 기간이 현행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된다. 고용노동부는 1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외국인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지금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번 입국하면 최대 4년10개월간 근무할 수 있고, 해당 기간 한 사업장에서만 근무한 경우 재입국 특례를 인정받아 다시 4년10개월 동안 일할 수 있다. 다만 재입국 특례를 인정받더라도 출국한 날로부터 3개월 뒤에야 재입국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산업 현장에서는 업무 공백에 따른 문제점을 호소해왔다. 이에 정부는 재입국 특례를 인정받은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 제한 기간을 1개월로 단축했다.또한 한 사업장에서 4년10개월을 근무해야 하는 경우에만 인정되던 재입국 특례 요건도 완화했다.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