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급 인력 빼가기로
LCD 세계 1위 맛보자

업계 "퇴직자 이동 파악 불가
정부도 인력 유출 대책 마련해야"
‘연봉 5억원에 체류비와 고급 아파트 보장’, ‘급여 10배 인상, 항공권 무제한 지급’.

최근 국내 헤드헌팅 업체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의 한국인 부장급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전문가 채용 공고다. 한국에선 대기업 고위 임원이 아니고선 받을 수 없는 파격 대우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OLED 인력 빼가기’에 나서는 것은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제치고 LCD(액정표시장치) 세계 1위에 오른 중국이 OLED 시장에서도 종주국인 한국을 누르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shinj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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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과 연합해 OLED에 눈독
6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OLED를 선정하고 최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용 OLED와 관련해선 BOE가 가장 적극적이다. 창청 BOE 부회장은 지난 9월 한 콘퍼런스에서 “2024년까지 점유율 40%를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세계 1위 삼성전자(72.6%·3분기 기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가 독점하고 있는 TV용 OLED 패널 분야에서도 중국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국 2위 업체 CSOT는 지난 8월 실적발표회에서 “내년 광저우에 8.5세대 (TV용) OLED 생산라인을 착공해 18개월 뒤부터 본격 가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유일의 OLED 패널 생산업체 LG디스플레이와의 ‘정면승부’를 예고한 것이다. 6월엔 일본 디스플레이업체 JOLED의 지분 11%를 2270억원에 사들였다.
현지 채용 때도 ‘한국어 능통자’ 우대
중국 업체의 ‘아킬레스건’은 기술력이다. OLED산업은 대규모 장비투자에 더해 수년간의 연구개발(R&D)이 필수적이다. OLED의 특성상 ‘번인(잔상)’ 현상 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는 ‘기술력’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지난해부터 OLED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중국 업체의 기술 수준은 한국보다 5년 정도 뒤처진 것으로 평가된다. BOE가 애플과 삼성전자에 스마트폰용 OLED 패널을 납품하지 못하고 있고, LG디스플레이만 TV용 OLED 패널을 만들 수 있는 게 단적인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대규모 보조금을 살포하며 ‘OLED 육성’에 적극 나서자 기술기반이 취약한 중국 기업들이 급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정부와 OLED 합작사를 설립한 BOE가 억대 연봉을 제시하며 한국인 OLED 재료 전문가를 초빙하는 이유다.

중국 내에선 한국 인력 영입을 위한 내부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BOE, CSOT 등은 중국 대졸자 채용 공고에 ‘한국어 가능자 선호’를 명시하기도 한다. 한국인 엔지니어로부터 기술을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BOE는 중국 경력사원 공고에 ‘한국어 번역 전문가’를 포함시키면서 ‘한국어 TOPIK 5급 이상’이란 조건을 걸었다.
유령 계열사 설립해 인력 빼가기도
중국 기업의 적극적인 ‘한국 기술자 빼가기’ 움직임에 한국 기업들은 긴장 상태다. LCD산업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DSCC 등 일부 시장조사업체는 2025년 중국의 OLED 시장점유율이 한국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인력 유출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도 기업들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 OLED가 반도체와 함께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의도적인 ‘기술 탈취 및 유출’ 등은 엄격하게 제한되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력 이동까지 규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쟁사 2년 이직 금지’ 등을 근로계약 조항에 넣어 인력 유출을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유령 계열사를 설립하고 한국인 기술자를 영입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다. 2017년께 삼성 출신 디스플레이 기술자가 중국 기업의 위장 계열사에 취업했다가 적발돼 재판을 받은 사례도 있다. 디스플레이 업체 관계자는 “모든 퇴직자의 이동을 파악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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