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대행업체 ‘뽀득’이 배달 앱과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배달 앱 입점업체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대신 재사용할 수 있는 식기를 쓰고, 이를 설거지 대행업체가 모아서 세척한다면 말이다. 그러면 쓰레기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고, 식기세척 시장에선 ‘제2의 쿠팡’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아직은 상상의 영역이지만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의식주(衣食住) 벤처에 주목하는 이유는 특유의 확장성 때문이다. 일상이기에 소비자가 쉽게 지갑을 연다. 그런 일상에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으로 무장한 청년 창업가들은 금맥(金脈)을 발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창업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고 있다. 의식주 각 영역의 불편함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는 ‘코로나 창업 공식’이 대세가 됐다.

‘생각한 대로’ 창업 전성시대

'집콕 불편' 해소에 지갑 연다…코로나가 바꾼 '벤처 창업 공식'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DB)업체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올해(10월 말 기준) 음식·쇼핑·뷰티·패션·물류 등 의식주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8521억원으로 집계됐다. 투자금액은 2018년(4조133억원)과 지난해(6조5965억원)에 비해 줄었지만 투자 건수는 205건에 달해 2018년(201건)을 넘어섰다. 최근 3년간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의식주 스타트업이 254곳이다.

의식주 벤처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집닥이라는 인테리어 플랫폼이 등장하자 도배 장판 등 영역별로 세분화된 벤처들이 등장하고 있다. ‘오늘의집’은 인테리어 경험에 대한 공유를 쇼핑으로 연결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지난달 네이버 등으로부터 770억원을 유치했다.

‘입소문’을 활용한 업체들도 벤처캐피털의 단골 투자 대상이다. 성형시술 후기를 공유하는 플랫폼인 ‘강남언니’는 작년과 올해 230억원을 투자받았다. 디밀, 레페리, 아이스크리에이티브 등 ‘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다중채널네트워크(MCN)업체는 라이브방송에 뛰어든 유통 대기업들이 가장 탐내는 스타트업 중 하나다.

조(兆) 단위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켓컬리는 올해에만 2000억원을 유치해 단일 기업으로 가장 큰 금액을 투자받았다. 2018년 이후 3년 연속 투자를 이끌어냈다. 마켓컬리처럼 ‘3연타석 홈런’을 친 스타트업으론 밀키트 제조업체 프레시지를 비롯해 중고나라, 셀러허브(쇼핑몰 통합관리 솔루션), 맘마먹자(동네 마트 배달 앱), 디어달리아(식물성 화장품) 등이 있다.

중고마켓, 코로나가 만든 신천지

코로나19는 예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을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바꾸고 있다. 중고 시장이 대표적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이 중고 시장 거래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에만 중고나라와 번개장터가 각각 1000억원, 56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근마켓은 중고와 동네라는 키워드를 연결해 전에 없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용현 당근마켓 공동창업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자기 주변의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창업과 성공의 기회는 주위에 있다”고 말했다.

편리한 온라인 쇼핑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통 테크’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잼페이스’는 얼굴인식 기술을 활용해 유튜브에서 메이크업 동영상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로 투자를 유치했다. ‘라운즈’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상으로 안경을 피팅해주고, ‘브리즘’은 3차원(3D) 기술에 기반해 맞춤 안경을 제작해주고 있다.

롯데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다만 최근엔 해당 업종 1, 2위에만 투자가 집중되는 등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휘/김기만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