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식당에서 열린 제11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식당에서 열린 제11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에 불리한 경제지표가 나올 때마다 모호한 화법으로 일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제11차 부동산시장점검관계장관회의에서 도마 위에 오른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라는 식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경제상황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경제신문이 3일 부동산시장점검관계장관회의 등 홍 부총리가 주재한 회의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홍 부총리는 정책 목표와 반대되는 지표가 나올 때마다 모호하거나 상반되는 의미의 표현을 교차해 사용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상승폭 둔화세가 주춤", 대체 무슨말?

"매수심리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라고 말한 지난 2일이 대표적이다. 우선 매수심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집값을 말하는 것인지 소비자들의 주택 구매 수요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평가다. 통상적으로는 주택 구매 수요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아 일부 언론에서는 홍 부총리가 "집값 진정세가 주춤하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진정세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집값 진정세는 상승 폭 둔화와 집값 하락 상황에 모두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날 제시한 주택 시장 동향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은 10월 넷째주 0.01%상승에서 11월 넷째주 0.02% 상승으로 상승폭이 커졌다. 매매수급지수는 11월 첫째주 98.0에서 99.8로 높아졌다. 10차 회의가 지난달 19일에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아파트 가격 상승 폭이 확대되고 수급지수도 높아졌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평가다.

홍 부총리의 모호한 발언은 올해 지속적으로 나왔다. 9월 7차 부동산회의 때는 "전세가격 상승 폭 둔화세가 다소 주춤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한 문장에서 상승과 둔화, 둔화세의 주춤 등 상반되는 내용을 교차해가며 발언했다. 메시지를 읽는 국민들이 전세가격이 상승했는지 떨어졌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당시 실제 지표를 보면 전세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전셋값 상승률은 8월 첫째주 0.17%, 둘째주 0.14%, 셋째주 0.12%, 넷째주 0.11% 등이었다. 다섯째주부터 9월 둘째주까지 3주 연속 0.09%가 올랐다. 전세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거나, 상승 폭은 둔화됐으나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고 표현해야 정확했다.

6월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중대본) 회의에서 "집값 하락세가 주춤했다"고 말한 것은 상대적으로 명징하다는 평가다. 다만, 하락세가 주춤한 것이 보합 또는 상승세로 전환한 것인지 하락세는 이어지지만 폭이 둔화된 것인지는 역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성장률 전망은, "하향조정됐으나 상향조정됐다" 발언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두고도 헷갈리는 표현이 수시로 사용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9월 한국의 성장률을 -0.8%에서 -1.0%로 낮췄을 때 홍 부총리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은 -1.0%로, 8월 전망(-0.8%)보다는 하향 조정됐으나 6월 전망(-1.2%) 대비로는 상향 조정됐다"고 했다. 기재부 보도자료엔 아예 "전망이 6월대비 상향됐다"고 나왔다. 그 뒤에 "전망 상향 폭은 8월 한국경제보고서 발표(+0.4%포인트) 당시보다 다소 축소됐다"고 덧붙였다.

실제 OECD가 발표한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6월 -1.2%, 8월 -0.8%, 9월 -1.0%였다. 그런데 8월 전망치와 비교하지 않고 6월 전망치와 비교해 마치 성장률이 상향된 것처럼 발언했다는 지적이다. OECD 보고서는 '한국 성장률 전망이 지난달에 비해 -0.2%포인트 하향됐다'는 게 핵심인데 굳이 6월 전망치를 끌어와서 "상향됐다"고 하고 "전망 상향 폭이 축소됐다"는 어려운 말까지 동원한 것이다.

정부가 정책방향에 상반되는 통계가 나올 때마다 이를 최대한 좋게 해석하기 위해 유리한 지표를 '취사선택'하고, 모호한 표현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