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채널네트워크(MCN) 회사인 디밀(디퍼런트밀리언즈)은 친환경 화장품 제조업체 시너지플래닛츠를 인수했다고 3일 밝혔다. 금액과 지분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시너지플래닛츠는 친환경 브랜드 ‘바디버든 프로젝트(BBP)’를 운영하는 회사다. 디밀은 시너지플래닛츠를 통해 생산한 제품을 현대홈쇼핑 등에 입점시킬 계획이다.
작은 떨림과 함께 바이올린의 보잉(활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내 부드럽고 우아하게 선율이 흘렀고, 중간중간 조심스럽게 내뱉는 연주자의 호흡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절정에 이르자 연주자의 손과 어깨는 더욱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활의 탄력을 이용해 바이올린 몸통으로부터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내 앞엔 ‘바이올린의 여제’ 안네 소피 무터가 서 있었다.공연장에서 무터를 본 게 아니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에디토리’ 청음실에서 1993년 발매된 그의 앨범 ‘카르멘 판타지’를 꺼내든 것이다. 무터와 빈 필하모닉이 쥘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에 나오는 ‘명상곡’을 함께 연주했다. 비록 혼자 청음실에 있었지만, 공연장에서 이들을 본 것처럼 그림이 그려졌다. 1억원대 이탈리아 하이엔드 오디오 ‘소너스 파베르’가 가져다준 환상이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와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하이엔드 오디오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 감동 때문 아닐까.하이엔드 오디오의 범위는 전문가마다 다르게 책정하지만, 넓게는 1000만원대부터 얘기할 수 있다. 국내에선 10억원대면 최고가에 속하고, 해외에선 그보다 높은 가격으로도 유통된다. 물론 ‘이 비싼 걸 왜 사는 거지’라며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하이엔드 오디오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전엔 소수의 애호가가 즐기는 게 전부였다. 최근엔 집에 좋은 오디오를 갖추고 음악을 듣거나, 청음실에 들러 음악 감상 하는 것을 하나의 문화생활로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조영직 에디토리 부사장은 “코로나19 확산에도 오히려 3월부터 매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청각은 오감(五感) 중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이다. 사람들은 왜 하이엔드 오디오로 청각을 만족시키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 장소를 파고든다.”불안의 시대, 우리는 가장 섬세한 감각을 스스로 열어 깊숙이 묻어둔 영혼의 ‘음상(音像)’을 찾으려 하는 건 아닐까.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푹신한 소파, 어둑한 조명. 그리고 소파 앞 양쪽엔 오디오 스피커가 놓여 있다. 정면에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된 곳도 있다. ‘영화를 보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국내 주요 오디오 매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청음실이다. 베를린필이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한 공연 실황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하이엔드 오디오로 가득 울려 퍼지는 선율을 즐길 수 있다. 그 감동을 눈과 귀로 담아내기 위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오디오 매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 ‘살롱’ 문화가 깃든 오디오 공간하이엔드 오디오 매장이 음악 애호가들의 성지이자 복합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 오디오 매장엔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청음실이 대부분 갖춰져 있다.아시아 최대 규모의 하이엔드 오디오 공간인 ‘오드’를 포함해 ‘오디오갤러리’ ‘에디토리’ 등엔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오디오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감상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를 골라 혼자 또는 지인들과 함께 들을 수 있다. 취미를 즐기고 공유하는 ‘살롱’ 문화가 오디오 매장에서 꽃피고 있는 것이다.가장 대표적인 곳으로는 오드가 꼽힌다. 오드는 덴마크의 ‘스타인웨이 링돌프’를 포함해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의 18개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사업은 2016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쇼룸 ‘오드 메종’을 처음 열면서 시작됐다. 오드 메종이 음악 애호가들이 조용히 소리의 품격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알려지며 입소문이 났다.오드는 이후 ‘오드 포트’(신사동), ‘오르페오’(한남동) 등 서울 곳곳에 공간을 확장했다. 오드 포트엔 하이엔드 오디오가 전시돼 있는 것은 물론 아티스트들의 연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라이브홀도 갖추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베이스 연광철,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이곳에서 간담회와 공연 연습 등도 했다. 연광철과 김정원의 ‘독일가곡앨범’ 녹음도 이곳에서 이뤄졌고, 오드가 직접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오드 포트에서 공연 연습 중이던 김정원은 “음악을 좋아하고 직접 하고 있지만 오디오에 대해 잘 알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오가며 오디오가 내가 만들어낸 사운드를 가장 좋은 소리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오디오도 바꿨다”며 웃었다. 오드는 한남동엔 클래식 실황, 오페라 등을 상영하는 ‘오르페오’와 고급 주거단지 ‘나인원 한남’에 플래그십 스토어와 청음실도 열었다. 지난 10월엔 부산 해운대점도 개관했다. 유현주 오드 콘텐츠개발 PD는 “오디오 애호가들을 위한 문화적 공간을 제공하고, 음악이 흐르는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디오에 가구, 조명까지 한번에서울 성북동에 있는 ‘오디오갤러리’는 스위스 오디오 ‘골드문트’를 수입해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골드문트’ 중엔 350만달러(약 39억원)에 달하는 제품도 있다. 국내에선 10억원대가 주로 판매되고 있다. 오디오갤러리엔 대형 스크린 좌석에 와인, 맥주 등을 즐길 수 있는 ‘골드문트 시어터’도 있다. 바비큐 파티가 가능한 테라스, 공연할 수 있는 다목적홀도 갖추고 있다.오디오와 가구, 조명 등을 함께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 공간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 성수동 ‘에디토리’ 3층에 가면 이탈리아 ‘소너스 파베르’와 같은 고가의 오디오부터 의자, 수납장 등 직접 제작한 가구로 함께 꾸민 청음실을 구경할 수 있다. 2층엔 커피를 마시며 조명, LP 등도 둘러볼 수 있다.조영직 에디토리 부사장은 “오디오 주요 소비층인 중장년층뿐 아니라 오디오보다 이어폰, 블루투스 스피커에 익숙한 20~30대도 가구나 조명을 보러 왔다가 오디오 소리에 빠져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비싼 오디오를 사면 주변 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곤 한다. “괜한 사치를 부린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사람이 앨범에 녹음된 소리는 다 똑같고, 오디오를 달리 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형준 파인에이브이(샘에너지) 대표는 이를 ‘편견’이라고 부른다. 서울 문정동에 있는 파인에이브이 청음실에서 만난 안 대표는 “오디오는 자동차와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가 저렴하다고 해서 아예 못 달리거나 속도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며 “하지만 좋은 차일수록 승차감과 성능이 뛰어나듯 좋은 오디오는 최상의 소리에 닿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안 대표는 이 매력에 일찌감치 빠져 사업을 시작한 국내 오디오 1세대다. 그는 연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돌연 1996년 오디오 사업을 시작했다. “작곡과를 나온 어머니와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좋은 오디오를 많이 접했어요. 그러다 직접 오디오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이 회사는 현재 최고 7억~8억원대의 독일 ‘MBL’ 등 15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청음실엔 사업 초창기부터 찾아온 단골 손님들과 오디오 동호회 회원 등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동호회 대상으로 신제품 발표회도 열고, 10~20명 규모의 음악감상회도 한 달에 한 번 개최합니다.”하이엔드 오디오는 구매할 때 많은 돈이 필요한 게 흠이다. 하지만 한 번 구매하면 오랜 시간 쓸 수 있다. “부품만 있으면 수리할 수 있어요. 대를 물려서 쓸 수 있을 정도죠.” 하이엔드 오디오는 중고가도 높게 형성돼 있다. “중고가가 판매가의 최대 40~50%까지 형성돼 있어요. 다른 제품으로 바꾸고 싶으면 기존 제품을 팔아 보태서 살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하이엔드 오디오로 음악을 감상하는 건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입니다.”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