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현재’(메모리사업부)와 ‘미래’(파운드리사업부)를 책임질 수장이 동시에 바뀌었다. 2일 공개된 ‘2021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53)과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56)이 주인공이다.

1995년 삼성전자에서 동시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그동안 DS(반도체부품)부문의 ‘차세대 대표 주자’로 꼽혔던 반도체 최고 전문가들이다. 두 사업부장은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각각 ‘메모리 초격차’를 유지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를 실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안심할 수 없는 메모리 반도체

삼성전자가 50대 초반(1967년생)인 이정배 사장을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메모리사업부 수장으로 전격 발탁한 건 고조되고 있는 ‘위기감’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세계 1위 업체(3분기 D램 점유율 41.3%, 낸드 33.1%)지만 최근 경쟁 업체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달 미국 마이크론에 ‘170단 이상 낸드플래시 첫 양산’ 타이틀을 빼앗긴 게 대표적 사례다.

D램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4㎚(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대 공정에 진입한 이후부터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벌리는 게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우물을 팠다’는 평가를 받는 이 사장은 난국을 타개할 적임자로 평가된다. 이 사장은 학부와 석·박사를 모두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D램설계팀장, 품질보증실장, D램개발실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 사장은 ‘정석’을 중시하는 동시에 논리적이고 꼼꼼한 성품을 갖췄다”며 “메모리 세계 1위를 지키며 경쟁업체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TSMC와의 격차 좁혀야

파운드리사업부를 맡게 된 최 사장은 공정·제조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전자재료 박사 출신으로 반도체연구소 공정개발팀장, 파운드리제조기술센터장 등을 거쳤다.

최 사장이 이끌게 된 파운드리사업부는 현재 ‘변곡점’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퀄컴, 엔비디아 등에서 대규모 주문을 따내며 성과를 냈지만 세계 1위인 대만 TSMC(3분기 점유율 53.9%)와 삼성전자(17.4%)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대규모 설비·기술 투자가 필요한 5㎚ 이하 초미세공정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최 사장은 한 번 목표를 세우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격렬한 스포츠의 대명사인 미식축구(풋볼) 마니아라는 점도 승부욕이 강한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SNS 프로필에 본인이 수학했던 오하이오주립대 미식축구팀과 전통의 라이벌 미시간대 헬멧이 나란히 놓인 사진을 올려놨을 정도다.

11년 만에 CTO 부활

젊은 사업부장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은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정은승 전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과 종합기술원장으로 이동한 진교영 전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 담당한다. 종합기술원은 5~10년 뒤를 내다보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삼성전자는 “진 사장이 그동안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신기술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황창규 전 사장 퇴임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CTO가 11년 만에 부활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으로 꼽힌다. 정 CTO는 현행 기술 연구 조직인 반도체연구소 등을 산하에 두고 ‘기술 초격차’에 속도를 내는 역할을 맡았다. 삼성 안팎에선 CTO가 ‘차기 DS부문 대표로 가는 중간다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