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30일 50~299인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을 이달 말 종료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계는 계도기간 종료 재고 요청을 하는 등 아우성을 쳤고, 주요 언론들은 정부의 계도기간 종료 소식과 탄력근로제 개편 등 보완입법을 미루고 있는 국회를 질타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외주업체 바뀌어도 고용은 승계?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대부분 언론들의 관심이 쏠려 있던 이날, 국회에서는 그 파급 효과를 가늠하기 힘든 협약이 하나 체결됐다. 협약 당사자는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제조연대 김만재 의장이었다.

두 사람은 협약서에서 "사업 이전(변경) 시 고용·근로조건을 포하한 노동관계 승계를 위한 법률의 제정안 마련을 위해 연구 및 실태 파악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한다"고 했다.

각자의 '액션플랜'도 담았다. 송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약속한 ‘영업 양도 등 사업 이전시 고용 등 근로관계 승계 제도화’ 공약의 책임 있는 이행을 위한 입법적 개선에 노력한다고 했다. 김 의장은 근로자들이 사업 이전(변경)이나 하청업체 변경에 따라 고용이 불안해지거나 근로조건의 저하를 강요당하는 실제 사례 등을 분석하여 입법에 반영되도록 의견을 전달하고 제반 지원에 노력한다고 썼다.

◆하도급 근로자 보호라는 명분 앞세워

협약의 배경은 이렇다. 현행 노동관계법에는 기업의 합병, 양도 등 기업 변동에 따른 고용관계의 문제, 즉 고용관계가 승계되는지, 승계 이후의 근로조건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의 고용이 불안해지고 근로조건이 열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 측은 또 인력 활용의 유연성 및 인건비 절감 목적으로 한 하도급·용역 등 외주화가 전 산업에 만연하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며 내년초 입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양 측의 협약문을 요약하면 하도급업체 변경 등 기업 변동 시에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나아가 고용 승계를 명문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개정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고용부는 가이드라인에서 '도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계약이 종료하거나 중도에 해지되어 수급사업주가 변경되는 경우에 고용승계 등의 방법으로 직전 수급사업주의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고용 및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또 '수급사업주는 사내하도급계약이 종료하거나 중도에 해지될 경우, 해당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할 것으로 예정한 다른 사업장이 있다면 그 사업장으로 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즉 고용안정을 넘어 전 사업장에서의 근속연수까지 모두 인정하는 ‘고용 승계’ 방식을 채택하도록 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가 지침 내놓자 환노위원장은 입법 분위기 띄워

정부 지침을 두고 경영계에서는 대법원 판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은 하청 근로자의 원청 사업에 실질적인 편입 여부, 업무 지휘명령권, 교육·훈련·휴가 등 직접 결정권 등을 불법파견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정부 지침은 이에 상충된다는 비판이었다.

사내 하도급 근로자의 고용승계에 관한 정부 지침에 이어 여당과 노동계의 협약까지 나오면서 내년 입법 방향에 따라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한 대형로펌 노동전문 변호사는 "사업 변경에 따른 고용관계 문제는 현행법에 명시돼있지 않아 차제에 한번 정리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다만 계약자유의 대원칙을 넘어 무조건 고용승계에만 방점을 찍고 입법을 추진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