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가 “우리보다 더 강력한 대주주 의결권 제한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고 지원 사격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탈리아는 일부 사외이사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사실상 0%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 주장의 핵심이다.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경제계는 그동안 “해외 입법례가 없다”고 맞서왔다.

한국경제신문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의 관련 법조항을 놓고 여러 법학·경제학자들과 함께 시민단체 주장이 맞는지 검증했다. 검증 결과 이들 나라 회사법에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항은 없었다. 분석에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송원근 연세대 객원교수가 참여했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고, 최대주주 의결권을 특수관계인 합산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伊선 대주주 의결권 0%?…"의결권 제한한 국가 없다"

논란의 이스라엘 사외이사 규정

이스라엘 회사법은 △상장사가 2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뽑아야 하며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들은 주주총회에서 과반의 찬성과 △지배주주와 이해관계가 없는 주주(소수주주)의 과반 찬성으로 선임된다고 규정한다. 소수주주에게 일종의 거부권만 있는 셈이다. 소수주주가 거부하면 이사회는 다른 후보를 추천하면 된다. 최 교수는 “각 주주의 의결권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사외이사는 최대 3연임 할 수 있다. 이때 1% 이상 주주가 기존 사외이사를 재선임 후보로 추천한 경우 소수주주 과반 찬성만으로 재선임된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이를 두고 “대주주 의결권이 0%로 제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수주주 과반 찬성으로 재선임된 사외이사는 앞서 회사 이사회 추천으로 주총에서 과반 찬성을 받아 선임된 인사다. 게다가 1% 이상 주주가 아닌 이사회가 기존 사외이사를 재선임 후보로 추천했다면 최초 선임 때와 같은 룰이 적용된다. 송 교수는 “특정 조건 하에 소수주주 과반 찬성으로 사외이사 연임만 가능할 뿐 대주주 의결권이 0%로 제한된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가 뽑지 않았으니 의결권 없다?

이탈리아 회사법은 한국처럼 개별 이사 후보에 대해 찬반을 투표하는 대신 의결권 2.5% 이상을 보유한 주주들이 제안한 복수의 후보명부에 모든 주주가 투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중 최다 득표를 한 후보명부의 후보들이 이사로 선출되지만, 최소 한 명은 대주주와 이해관계가 없는 차순위 후보명부에서 선임돼야 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를 두고 “후보명부를 제안한 주주는 본인이 제안한 후보명부에만 찬성표를 던져야 하고 대주주가 투표하지 않은, 소수주주가 제안한 후보가 이사가 된다는 점에서 대주주 의결권이 0%로 제한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회사법은 의결권 제한 조항이 없는 데다 투표 방식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각 회사는 정관으로 투표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송 교수는 “회사 정관으로 본인이 제안한 후보명부에만 찬성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모든 주주가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대주주라고 의결권을 제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시민단체 논리대로라면 소수주주 역시 본인이 제안한 후보명부에만 투표해야 하니 최대주주 후보명부에 대한 의결권은 0%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우리나라 선거에 빗대면 본인이 뽑지 않은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본인에게 선거권이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글로벌 기업’ 없는 나라들과 비교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경제계가 그동안 감사위원 선출 때 적용되는 대주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례를 제시한 것”이라며 “규제 사정은 모든 나라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번 검증에 참여한 법·경제학자들은 “사실에 기초한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면서도 “우리나라 경제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탈리아, 이스라엘 사례를 탐구하는 것은 의미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스라엘과 이탈리아는 각각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회사가 400~500개 수준이며, 이들 나라에 글로벌 100대 기업은 한 곳도 없다”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경쟁해야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도병욱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