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대주주가 '내 팔 하나 자르겠다'는 결단 없었다"고 비판
故 조양호 회장과 악연…아시아나 인수로 '윈윈' 노리나

한진그룹이 산업은행의 제안대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의 끈질긴 인연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고(故) 조양호 회장과 이동걸 산은 회장의 '악연'이 고인의 뒤를 이은 조원태 회장 대에서는 긍정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한진해운 파산때 '악역' 산업은행, 이번엔 한진그룹 우군으로
16일 업계에 따르면 2016년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과 큰 갈등을 겪었다.

1977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한진해운은 창업주 타계(2002년)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셋째 아들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하며 위기를 맞았다.

조수호 회장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섰으나 글로벌 해운업 장기 침체 등과 맞물리며 회사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했다.

결국 최 회장은 시숙인 조양호 회장에게 회사 지분과 경영권을 넘겼고, 조양호 회장이 2014년부터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에 매진했으나 업황 악화가 장기화하며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2016년 4월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은 당시 유동성 부족으로 연체한 용선료 등의 규모가 6천억∼7천억원에 달하는 데다 이후로도 2018년까지 1조∼1조2천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채권단은 부족한 자금을 자체 해결하라며 한진그룹을 압박했지만 조양호 회장은 4천억원 이상은 마련하기 어렵다고 버텼다.

조양호 회장과 이동걸 산은 회장은 2016년 6월 독대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당시 국내 1위·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거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진해운 파산때 '악역' 산업은행, 이번엔 한진그룹 우군으로
이동걸 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대주주가 '내 팔 하나 자르겠다'는 결단이 없었다"며 오너인 조양호 회장의 희생이 부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조양호 회장은 경영난을 겪던 한진해운을 2014년 떠맡으면서 한진칼과 대한항공 등 계열사를 통해 1조 원 이상을 지원했다는 점을 주장했다.

2017년에는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을 위해 조양호 회장이 회장으로 있던 방위산업진흥회(방진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며 산은과 조양호 회장의 질긴 인연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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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로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산은 주도의 채권단 관리 체제에 돌입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책은행에서 지원받은 3조3천억원을 이미 소진했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에서 2조4천억원을 지원받기로 하고 최근 2천400억원을 지원받았다.

손자회사인 금호리조트 등의 매각도 추진 중이다.

산은 입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 자체가 어려운데다 당분간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설 매수자를 찾기도 어려운 상태다.

이런 가운데 같은 항공업을 하는 한진그룹에서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기로 하면서 산은 입장에서는 큰 숙제를 해결한 데다 자연스럽게 항공업계 구조조정도 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진해운 파산때 '악역' 산업은행, 이번엔 한진그룹 우군으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조원태 회장 입장에서도 산은이라는 '우군'을 확보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로 구성된 '3자 연합'의 경영권 위협에서 한층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한진그룹과 산업은행 모두 '윈윈'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항공업계의 업황 악화와 3자연합의 반발 등이 변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