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에서 화재가 발생한 오펠 암페라e(쉐보레 볼트ev의 유럽 버전). 이머전시리포트 캡처.
최근 독일에서 화재가 발생한 오펠 암페라e(쉐보레 볼트ev의 유럽 버전). 이머전시리포트 캡처.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코나ev'에 이어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볼트ev'의 대규모 리콜에 나섰다.

LG화학은 아직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같은 배터리팩을 장착한 완성차 업체들이 추가 리콜을 실시할 경우 사태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GM은 14일 쉐보레 볼트ev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리콜은 한국 오창 공장에서 생산된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2017~2019년형 볼트ev 6만9000대가 대상이다. 국내에서도 리콜 대상 차량이 9500대에 이른다.

앞서 지난달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이 전기차 뒷좌석 하단부에서 주차 중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 3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NHTSA는 "화재 피해가 전기차 배터리가 있는 부분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근본적인 화재 원인은 아직 불명확하다"고 설명했다. GM도 자체 조사 결과 6만9000대중 5건의 원인불명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GM의 리콜과 관련해 "아직 배터리 결함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정확한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GM과 협력해 성실히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GM에 앞서 현대차도 LG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코나 전기차 7만7000대에 대한 리콜에 나선 바 있다.

◆"아직 배터리셀 문제로 단정하기 어려워"

코나ev와 볼트ev에는 비슷한 유형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각각 중국 난징 공장, 한국 오창 공장에서 생산됐지만 'NCM622' 파우치 타입이란 점에서 거의 같은 제품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배터리팩 용량(60KWhh)과 에너지밀도도 유사하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ev'에 탑재된 배터리도 LG화학 오창공장에서 같은 시점, 같은 라인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관리시스템과 냉각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며 화재 원인을 단순히 배터리 문제로 보기만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NHTSA 조사 결과 배터리가 화재 원인으로 밝혀질 경우 향후 LG화학의 수주 활동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약 150조원에 이르며, 현대차와 GM 이외에도 테슬라, 폴크스바겐, BMW, 벤츠, 포르쉐, 포드 등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다.

LG화학은 GM과 미국 오하이오주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있는데, 이번 리콜을 계기로 양사의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남양주시의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코나 전기차(EV)에서 불이 났다. 연합뉴스
지난달 남양주시의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코나 전기차(EV)에서 불이 났다. 연합뉴스
앞서 삼성SDI 배터리를 쓰는 BMW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의 화재 위험성이 있어 전 세계적으로 2만6700여 대를 리콜 조치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된 중국 전기차 ‘아이온S’에서 지난 5월과 8월 잇따라 화재가 발생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며, 테슬라도 지난해 파나소닉 배터리가 탑재된 '모델S'와 '모델X'에서 배터리 이상으로 추정되는 화재 위험이 있어 리콜을 결정한 바 있다.

◆"소니 노트북처럼 안정성 개선될 것"

업계에서는 잇딴 전기차 리콜 사태를 '성장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기차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고 있지만 내연기관 차량대비 전기차의 화재 발생률이 높다고 할 수 있는 통계적 근거는 없다"며 "현재 미국에서만 연간 20만대 이상의 가솔린 차량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기차의 안정성 등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의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에너지 안전 시험 회사인 에너지스토리지리스폰스의 닉 워너 사장은 "2000년대 중반 노트북 시장에서 일본의 소니 등이 배터리 화재 문제 등을 겪긴 했지만 결국 안정성을 개선했다"며 "기술 발전에 따라 전기차도 비슷하게 화재 문제를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