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방지를 위해 밤 10시 이후 배송을 금지하는 등의 대책을 12일 발표했다. 한 택배회사 기사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정부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방지를 위해 밤 10시 이후 배송을 금지하는 등의 대책을 12일 발표했다. 한 택배회사 기사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앞으로 CJ대한통운 등 택배회사 기사들이 밤 10시 이후엔 배송을 하지 않는다. 올 들어서만 10명이 사망하는 등 택배기사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정부가 내놓은 조치다. 정부는 또 택배회사 노사와 협의해 내년 상반기 택배가격을 올릴 계획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대책은 지난 8월 한국통합물류협회와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 등 4개 택배사의 ‘택배기사 휴식권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장관은 “1992년 택배 서비스 출범 이후 산업은 급성장했지만 제도,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해 그 부담이 택배기사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전가됐다”며 “이번 대책은 택배기사 보호뿐만 아니라 택배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밤 10시 이후 택배 배달 금지…내년 상반기 택배비 오른다
정부는 우선 주간 택배기사의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제한하기로 했다. 밤 10시에 앱 작동을 차단하고, 미배송 건은 ‘지연배송’으로 처리해 수령인에게 양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게 된다. 다만 식품 등 생물인 경우 예외적으로 심야배송이 허용된다.

또 지연배송을 이유로 해당 택배기사에 대해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등의 부당한 처우가 금지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작업시간 관리 제도 등을 평가기준에 포함하고, 기준에 못 미치면 택배 전용차 증차를 규제하는 등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다만 쿠팡, SSG닷컴 등 쇼핑몰을 운영하며 배송기사를 직접 고용한 경우에는 심야배송을 제한하지 않는다. 고용부 관계자는 “쿠팡 소속 배송기사는 다른 화주의 물건이 아닌, 자사 물품을 배송하는 근로자 신분”이라며 “특수고용직 보호 대책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택배기사 보호 대책을 담은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연내 제정하고, 공포 6개월 뒤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법 시행에 앞서 한진은 이달부터,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다음달부터 심야배송을 중단하기로 했다.

배송시간·물량 감소로 줄어드는 택배기사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택배비 인상 논의도 본격화된다. 택배비는 2002년 건당 3265원, 기사 몫(수수료)은 1200원이었으나 지난해 기준 2269원(수수료 800원)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조만간 사업주와 종사자, 소비자, 대형 화주, 국회, 정부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협의회’를 구성해 택배비 인상 등을 논의하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택배비 인상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16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3.9%가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을 전제로 가격 인상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택배비 하락은 시장 경쟁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되는 인상폭을 놓고 격론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또 택배기사의 수수료 감소를 야기하는 대형 화주 백마진(일종의 리베이트) 관행도 조사해 개선하기로 했다. 정부는 배송량, 지역 배송 여건 등 업체별 사정을 고려해 택배기사의 토요일 휴무제 도입 등 주 5일 근로 확산도 유도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당·정·청 회의를 열고 택배기사, 환경미화원 등 이른바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해 내년 1조8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백승현/최진석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