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에너지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장 진출을 추진하면서 민간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급격한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수요 대비 넘쳐나는 상황에서 한전까지 시장에 진출하면 민간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지난달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장 진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앞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월 한전의 신재생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현행법상 한전은 송·배전 및 전기판매 사업만 할 수 있다. 2001년 발전과 판매를 분리한 전력시장 구조 개편 이후 전기 발전은 한전 6개 발전자회사 및 민간업체가 맡고 있다. 이번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한해 한전의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맞물려 국내에 신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전력유통(송·배전망) 인프라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이 발전사업에 뛰어들면 공정한 시장경쟁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 의도대로 재생에너지 보급속도는 빨라질 수 있겠지만 민간 산업 생태계는 붕괴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선 여당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제기됐다.

태양광 발전 뛰어든다는 한전…업계 "다 죽을 판"
신재생에너지 가격은 수요 대비 공급 과잉으로 급락하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초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거래가격(현물 기준)은 3만9100원으로, 3년 전(12만7300원) 대비 30% 수준으로 폭락했다. 올 들어 매달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REC는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일종의 증명서다. 1REC는 1000㎾의 전기를 생산한 가격을 뜻한다. 22개 공급의무자(발전소)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맞추기 위해 REC를 의무 구입해야 한다. REC는 전력거래소에서 주식처럼 거래되기도 한다. 산업 현장에서 아직까지 신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이 낮은 상황에서 REC 판매는 민간업체의 최대 수익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민간업체를 대상으로 발전량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연간 의무구입 비율이 고정된 상황에서 REC 발급량이 크게 늘어나자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민간업체 관계자는 “REC가격 하락으로 수익은커녕 원가 회수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한전은 민간업체의 반발을 의식해 40㎿ 이상의 대형발전소 사업에 한해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달 말 민간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영농형 태양광이나 해상풍력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만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한전 없이도 대형발전소 프로젝트를 충분히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민간업체의 주장이다. 정부가 2017년부터 지난 8월까지 내준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 현황에 따르면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사업(3㎿ 이상) 중 40㎿ 이상은 전체의 75%에 달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인프라를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사업까지 맡겠다는 건 글로벌 추세를 거스르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에 불과하다”며 “전형적인 관제 뉴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