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회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입니다. 투자금을 어디에 투입하기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미래 세계와 경제가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죠.”

피유시 굽타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최고경영자(CEO)는 9일 세계경제연구원·KB금융그룹 주최 ‘2020 ESG 글로벌 서밋’ 국제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은행인 DBS는 2024년까지 200억달러를 지속가능 산업에 투자하는 등 ESG에 일찌감치 많은 관심을 기울인 금융사로 꼽힌다. 굽타 CEO는 “ESG와 관련한 지표 측정, 회계 등에 완벽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은행들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은행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볼 때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무시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훨씬 적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와 초저금리 기조가 ESG 확산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콩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프리미아 파트너스의 레베카 추아 매니징 파트너는 “기술 붐에 힘입어 ESG 펀드가 좋은 실적을 내 왔고, 코로나19를 계기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고 전했다.

호주 건설업계 퇴직연금기금 CBUS의 크리스티안 포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국이 선언한 ‘탄소 중립’ 목표는 호주에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며 “ESG가 많은 기업에 ‘파괴적 충격’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크 CIO는 “청정에너지가 안정화에 접어들면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겠지만, 아직 많은 자본 투자를 요구하는 단계”라며 “저금리 상황이 에너지 전환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ESG 투자가 국가별 상황을 외면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이뤄져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굽타 CEO는 “탄소 배출 산업에 무조건 자금 공급을 중단하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가장 쉽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운송, 항공, 농업 등 광범위한 산업이 탄소와 연관돼 있다”며 “이들 산업이 식량, 주택 공급 등을 통해 사회에 미치는 효과와 탄소 배출량을 균형 있게 고려해 투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