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운임 10년만에 '사상 최고'

배 못 구한 '배터리 1위' LG화학
시베리아 열차로 유럽 긴급 수송

삼성·현대차·SK 등 대기업들도
"부품 모자라 해외공장 멈출 판"
지난 6일 부산신항 부두에서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선적 작업을 하고 있다. HMM은 수출기업들의 요청에 최근 석 달간 북미 서안 항로(부산~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컨테이너선 네 척을 긴급 투입했다. 하지만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HMM  제공

지난 6일 부산신항 부두에서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선적 작업을 하고 있다. HMM은 수출기업들의 요청에 최근 석 달간 북미 서안 항로(부산~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컨테이너선 네 척을 긴급 투입했다. 하지만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HMM 제공

LG화학은 최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셀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유럽으로 보내고 있다. 카자흐스탄 드루즈바,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도착하기까지 2주가 걸린다. 해상운임이 급등한 데다 유럽으로 가는 배를 구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한 방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상운임이 철도운임을 뛰어넘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임시방편일 뿐 이대로 가면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웃돈 줘도 배 못 구해”
해상운임이 10년 만에 사상 최고치로 오르면서 수출 물류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화주들은 웃돈을 내고도 배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8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접수된 기업들의 해운 관련 민원은 40건에 달했다. 협회 관계자는 “9월까지만 해도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민원을 제기했지만 최근에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대기업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선사들 "돈 더 안 주면 계약파기" 횡포…대기업도 속수무책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등은 기존 계약 운임에 추가 할증료를 지급하고 있지만 선박 확보가 어려워 애를 먹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용 타이어(OE)와 교체용 타이어(RE) 모두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거래처에서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A전자업체는 최근 장기계약을 맺은 외국 해운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사전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하면서 미국으로 보내는 화물 25%에 대해 FEU(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000달러를 추가로 내지 않으면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B사는 작년의 열 배에 달하는 운임을 지급하고 항공편으로 부품을 보냈다. 계약을 맺은 외국 해운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노선을 통폐합하면서 경유해야 할 항구가 늘어나 운송기간이 한 달이나 늦어졌기 때문이다. B사 관계자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슈퍼갑’이 된 해운사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달 28일 수출입물류대책 4차 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운임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만큼 개입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는 국적선사 선대를 확충하고 화주 및 선사와의 장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에선 “선제적 대응책을 요청한 기업들의 목소리는 흘려듣고 한가하게 장기대책을 강구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진해운 파산이 해운대란 원인” 지적도
외국선사들 "돈 더 안 주면 계약파기" 횡포…대기업도 속수무책

일각에서는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 결정이 해운 대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 후 한국 국적선사의 컨테이너 선복량(적재능력)은 2016년 106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에서 올해 초 46만TEU로 절반 넘게 줄었다. 유일하게 남은 원양 국적선사 HMM(옛 현대상선)이 올해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을 인도받아 국내 선사의 선복량이 78만TEU로 늘어났지만 ‘반쪽’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올해 건조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은 모두 유럽 항로에 투입되고 있다. 국내 수출기업의 수요가 큰 미국 항로는 여전히 배를 잡기 힘든 상황이다. SM상선이 용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배들이 수익성 높은 중국 노선에만 몰리고 있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HMM 관계자는 “캘리포니아에는 2만4000TEU급을 수용할 수 있는 항구가 없다”며 “파나마운하도 1만6000TEU급까지만 통과할 수 있어 동부해안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HMM이 예정됐던 정기 서비스까지 취소하며 3개월 연속 북미 서안 항로에 컨테이너선 4척을 임시 투입하는 등 지원에 나섰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HMM은 매달 임시선박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내년 인도받는 1만6000TEU급 8척을 추가하면 총 90만TEU로 한진해운 파산 직전의 90%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1만6000TEU급 선박을 건조 중인 현대중공업이 배를 예정보다 빨리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8척 중 3척을 올해 말까지 건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계약 조건만 맞으면 조기 인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HMM 관계자는 “배를 빨리 받아도 노선에 투입하려면 가입 중인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의 다른 선사들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배를 투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만수/성수영/이선아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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