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지표의 실효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가 몰고 온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지금까지 연체율은 다양한 업종에 속한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회사의 사업 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이후 쏟아져 나온 각종 정책금융 탓에 연체율이 예전처럼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시장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경 CFO Insight]연체율 지표 얼마나 신뢰하세요?
대표적인 업종이 캐피털사다. 최근 캐피털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연체율 지표보다 차주의 미래 상환 능력을 반영하는 FLC(Forward Looking Criteria)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FLC는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을 의미한다. 미래의 부채 상환 능력을 반영한 게 특징이다.

캐피털사는 과거 자동차와 기계 등 물적 담보 금융 자산에 대한 할부·리스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갈수록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기업금융·투자자산 비중이 커지고 있는 추세다. 올 상반기 말 기준 할부금융과 리스 자산의 비중은 각각 16.9%, 18.5%에 그치고 있다. 과거엔 각각 20%를 웃돌았다.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산업 내 경쟁 심화 등으로 운용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데에 따른 고육지책 성격이 짙다. 고수익 투자 자산을 늘려 경상비용과 대손비용을 충당하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의외로 코로나19 장기화에도 캐피털사의 자산건전성은 양호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만 해도 캐피털사의 자산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실물경기 침체로 인한 타격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서다.

하지만 드러난 지표는 정반대였다. 캐피털사의 연체율이 단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캐피털사가 건당 금액이 큰 기업여신이나 투자자산을 확대하면 신규 취급에 따른 지표의 희석효과가 발생해서다. 표면적으로는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가 개선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실제 부실채권(NPL)이라고 불리는 캐피털사의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지난해 말 2.1%에서 올 상반기 말 2.0%로 개선됐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다른 시각으로 연체율 지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강욱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통상 오토할부·리스 등 물적금융은 여신 만기까지 원리금이 균등하게 상환되는 구조라 차주 신용도 변동에 따른 영향이 연체율 지표에 비교적 실시간으로 반영된다"며 "이에 비해 기업여신의 경우 일반적으로 만기 일시 상환 형태라 차주의 원리금 상환 능력 변화가 여신 만기 이전에는 연체율 지표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FLC 기준의 자산건전성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비단 캐피털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시중은행들의 고정 이하 여신 비율 역시 올 들어 개선세다.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시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표 개선이 일종의 착시 효과인 데다 '폭탄 유예'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내부 위험 관리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증권사 관계자는 "자산건전성을 어떤 잣대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금융회사 CFO들의 유동성 관리 정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CFO들이 전반적인 위험 관리 정책을 재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