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1080’을 중국 스마트폰 업체 비보에 공급한다. 내년엔 중국 대형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 오포에도 AP 신제품을 납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모바일 AP는 데이터 연산·통신 등을 담당하는 스마트폰의 두뇌와 같은 핵심 부품이다.

○ 중국 비보에 ‘엑시노스 1080’ 납품

삼성 '스마트폰 두뇌' 세계 3위 굳힌다…샤오미·오포에 탑재 추진
삼성전자는 오는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5㎚(1㎚=10억분의 1m) 공정으로 생산하는 엑시노스 1080 신제품 발표 행사를 연다고 2일 발표했다. 행사에선 엑시노스 1080의 기존 제품 대비 개선된 사항 등 세부 사양을 공개할 예정이다. 엑시노스 1080은 세계 6위 스마트폰 업체 중국 비보가 내년 1분기 출시하는 5세대(5G) 스마트폰 ‘X60’에 장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판슈에바오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연구소 상무는 지난달 7일 비보가 연 행사에 참석해 “최신 5㎚ 공정을 사용한 엑시노스 1080은 퀄컴의 스냅드래곤 865보다 좋은 성능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 퀄컴과 대등한 기술력 인정

엑시노스를 담당하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내년 세계 3위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 5위 오포에 스마트폰 AP 엑시노스를 납품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샤오미, 오포 스마트폰에 엑시노스 칩이 들어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시스템LSI사업부의 주요 고객사는 갤럭시 폰을 판매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비보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샤오미와 오포의 중저가 스마트폰 일부 모델에 AP를 납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퀄컴이 주로 납품하는 프리미엄 AP와 관련해서는 삼성전자가 기술력을 인정받은 뒤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엑시노스의 중국 스마트폰 업체 납품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추진하는 외부 고객사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엑시노스 AP는 2010년대 중반까지 주로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에만 사용됐다. 퀄컴 칩을 함께 썼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엑시노스를 퀄컴과의 가격 협상 때 지렛대로 삼는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

퀄컴 출신인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출신인 박용인 센서사업팀장(부사장)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서 영입한 인재들의 활약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무선사업부 납품 비중을 줄이고 중국 업체 중심으로 고객사 확대에 나섰다. 올 들어 비보에 엑시노스 980과 880 AP를 공급한 게 좋은 사례다. 올초 프리미엄 AP 엑시노스 990이 갤럭시S20 국내 모델에서 빠지는 ‘굴욕’도 겪었지만 출시 예정인 AP들은 반도체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 시스템 반도체 영업이익 1조7000억원

화웨이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화웨이는 AP를 자체 개발했지만 샤오미와 오포는 퀄컴, 미디어텍 등에서 AP를 조달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기회를 잡은 샤오미, 오포 등은 생산 확대를 위해 AP를 추가로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성비’ 좋은 엑시노스가 스마트폰 업체들의 레이더에 걸린 것으로 분석된다.

샤오미와 오포에 납품하게 되면 세계 AP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확실한 3위’ 자리를 굳힐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주로 납품하는 세계 1위 AP 업체 퀄컴과 2위 미디어텍의 점유율을 일부 빼앗아 올 수 있어서다. 지난 2분기 기준 삼성전자는 퀄컴(29%) 미디어텍(26%) 하이실리콘(16%)에 이어 애플과 공동 4위(1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이 더욱 탄력받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당시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부까지 분전하면서 올해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 매출 17조원, 영업이익 1조6000억원 이상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10%, 영업이익은 30% 이상 증가한 수치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