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한국 상속세 (5)·끝
재계 상속세 공포

20대그룹 22兆 마련해야
현대차 2.7兆·SK그룹 1.5兆
카카오도 兆단위 부담 가능성

"경영권 위협 엄살 아닌 현실"
국내 기업들이 상속세 공포에 휩싸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1조원에 육박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국내 20개 대기업집단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마련해야 할 상속세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
기업인 체감세율 75%…"상속세 내려고 지분 팔면 양도세까지"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 총수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는 사례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넷마블도 兆단위 세금 내야 할 판
3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자산 기준 상위 1~20위 대기업집단(34개 그룹 중 총수가 없거나 최근 상속을 한 기업 제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예상 상속세 규모는 22조694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28일 종가 기준 각 기업 총수가 보유한 주식 가치를 계산해 상속세 규모를 예측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타계로 당장 상속을 진행해야 하는 이 부회장은 10조9206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 그룹의 상황도 비슷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의 예상 상속세 규모는 각각 2조7631억원, 1조5018억원이다. 한화(3037억원)와 GS(2135억원), 현대중공업(5623억원), 신세계(6819억원) 등의 상속세 규모도 수천억원에 달했다.

2, 3세 기업인이 총수로 있는 전통 대기업만의 일이 아니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보유 지분(추정 가치 4조3324억원)을 넘겨받으려면 2조5995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셀트리온(2조7601억원), 넷마블(1조5671억원), 엔씨소프트(1조2646억원)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급성장한 기업의 총수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후계자가 당장 상속세를 마련할 방법이 없다”며 “창업주가 한평생 일군 기업의 경영권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구광모 LG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은 이미 7200억원, 3000억원 규모의 상속세 부담을 지고 있다. 홍성일 한경연 경제정책팀장은 “20대 그룹 총수가 보유한 지분 가치가 36조원 수준인데, 상속세 규모가 절반 이상인 22조원에 달한다”며 “상속세가 기업 경영권 승계의 장벽이 되고 있는 만큼 세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속세 내려다 최대주주 지위 잃기도
일각에서는 재계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상속세 때문에 최대주주 지위를 한때 놓친 사례가 있다. 이우현 OCI 부회장은 2017년 부친인 이수영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속세 1900억원을 부과받았다. 이우현 부회장은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지분 일부를 매각했고, 한때 3대 주주로 내려왔다. 지금도 이우현 부회장의 보유 지분은 5.5%로, 가까스로 최대주주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우현 부회장은 “상속세 부담도 큰데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할증이 붙고, 상속세를 내려고 주식을 팔면 주식 양도소득세까지 내야 한다”며 “분할 납부에 따른 가산금리까지 더하면 세금을 최대 75% 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당장 이재용 부회장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 일부를 팔아야 할 상황이고, 다른 대기업집단의 차기 총수들도 상속세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임원은 “차기 총수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 지분을 내다 팔다 보면 해외 기업 또는 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 타깃이 될 수 있다”며 “멀쩡한 기업의 경영권이 세금 때문에 흔들리고 그 결과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냐”고 호소했다.

경제계는 상속세를 적어도 20~3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상속세율을 낮추지 못하면 적어도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영권 보장을 위해 ‘1주=1의결권’ 원칙에 예외를 두는 주식 발행을 허용해달라는 주장이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최고 40%로 높은 편이지만,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지켜주고 있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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