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경영학 (4·끝)
위기 경영의 승부사
<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은 이건희 회장 > 이건희 회장이 1995년 삼성전자 광주공장에서 생산된 냉장고를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은 이건희 회장 > 이건희 회장이 1995년 삼성전자 광주공장에서 생산된 냉장고를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세계 최고였던 노키아도 몰락했습니다. 자만하면 안 됩니다.”

삼성전자가 애플을 누르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른 지 3년째인 2014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하루 종일 이런 메시지가 나왔다. 처음엔 “저걸 누가 모르냐”며 시큰둥했던 직원들도 반복되는 메시지에 긴장감을 되찾았다.

‘위기 경영’은 이건희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1993년 ‘신경영’도 위기 의식을 불어넣어 조직을 탈바꿈시키려는 취지였다. 이 회장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삼성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삼성이 소니를 누르고 애플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배경엔 마법 같은 ‘위기경영’이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널리 알려진 1993년 신경영 선언을 앞두고 이 회장은 소니 마쓰시타 필립스 지멘스 등 세계 일류기업 제품과 삼성 제품을 같이 진열하는 ‘비교 전시회’를 열었다. 이 회장은 책상 위에 놓인 삼성 제품을 하나씩 망치로 내려치면서 “모든 제품을 새로 만들라”고 사장들에게 호통쳤다.

2002년 4월은 삼성 사사(社史)에서 ‘잔치의 달’로 기록돼 있다. 삼성이 사상 처음으로 소니의 시가총액을 앞지르고 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을 넘어서는 등 승전보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흥겨웠던 분위기는 이 회장이 주재한 회의 후 싸늘하게 바뀌었다. 이 회장은 그해 4월 계열사 사장들을 삼성인력개발원에 모아 놓고 “5년, 10년 뒤에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일갈했다.

반도체 경기가 최고조에 올라 영업이익이 20조원을 넘었던 2004년에도 똑같았다. 그해 삼성 내부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위기의식’이었다. 이 회장은 “모든 것이 가장 잘 돌아가는 지금이 가장 큰 위기 상황”이란 말로 직원들을 다그쳤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경영 일선 퇴진을 선언했다. 비자금 사건으로 인한 특검 수사와 정치 공세에 맞서 삼성을 되살리기 위한 승부수로 ‘스스로를 버리는’ 카드를 뽑아든 것이었다. 당시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전략기획실까지 전격 해체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더 이상 밀리면 설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흔들리는 삼성을 붙잡았다.

이 회장의 ‘위기 경영’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해인 2014년까지 이어졌다. 그해의 키워드는 ‘마하(mach) 경영’이었다. 제트기가 음속(1마하=초속 340m)을 돌파하려면 엔진은 물론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질과 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듯, 삼성 역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위기’란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선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고 했고,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자칫하면 도태된다”고 했다. 5월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선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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