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초과유보소득 관련 현장 간담회. 중기중앙회 제공
27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초과유보소득 관련 현장 간담회. 중기중앙회 제공
“40년간 경영해왔지만 한번도 배당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미래를 위해 배당안한 유보금에 과세하겠다는 정부의 발상 자체가 전통 제조업계 입장에선 큰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강소기업 1만8000개를 회원사로 둔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석용찬 회장(화남인더스트리 대표)은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초과유보소득 과세 관련 간담회‘에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제도여서 즉각 폐기해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8월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오너일가 지분율이 80%가 넘는 개인유사법인의 적정 수준이상 유보금에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과세 대상만 국내 전체 기업의 31%인 25만개에 달하고, 중소기업의 전체의 49.3%가 해당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발표후 열린 이날 첫번째 업계 현장 간담회에선 중소기업 단체장을 겸직하고 있는 사장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기재부 관계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석 회장은 “중소기업들 이구동성으로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사업 의욕을 꺾을 수가 있나’라는 반응이었다”라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이런 일들도 회의를 하는 것 자체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말대로 했다간 신용등급 하락…성장사다리 걷어차"

정부 방침에 따라 유보금을 쌓지않고 배당할 경우 기업들은 부채비율 상승과 금융권 대출 회수 압박 등 재무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기술기업 7000여개를 회원으로 둔 중소기업융합중앙회 강승구 회장(케이원 전자 사장)은 “우리나라에 유보소득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며 “정부 방침대로라면 기업을 다 팔아야한다는 얘기”라고 울분을 토했다. “36년째 한번도 배당을 가져간 적이 없다”고 자신을 소개한 강 회장은 “중소기업 특성상 적자가 나면 자금조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배당받지 않고 유보금을 자기자본금의 30%이상 쌓아뒀다“며 ”그래야 신용등급이 안떨어지고, 금융권 대출이 가능하고, 공공기관 납품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실제 사내유보금을 줄이면 이익잉여금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부채비율이 올라간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기업의 유보소득은 현금성자산 뿐만 아니라 기계장치, 재고자산, 매출채권 등으로 보유하고 있어 회계상으로는 유보소득이 많아보여도 실제로는 배당 여력이 없을 수 있다.

금속가공제품 제조업체 6만8800개를 회원사로 둔 한국탱크공업조합의 이호석 이사장(성지기공 사장)은 “중소기업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대출 이자가 오르기 때문에 대부분 흑자를 유지하기위해 허수의 잉여금이라도 쌓을 수 밖에 없다”며 “사실상 현금으로 남아있지 않은 유보금이 대다수인데 여기에 세금을 매기면 중소기업들 생존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

가장 취약한 업종은 건설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은 법인사업자 비중이 43.6%로 제조업(17.2%)의 2배이상이다. 또 100억원 미만 공공입찰의 경우 부채비율이 얼마나 낮고 유동비율이 높은 지가 당락의 변수가 되기 때문에 정부 과세 방침에 따른 피해가 클 전망이다.

기계설비공사업체 7900여개를 회원사로 둔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의 정달홍 회장(성보엔지니어링 사장)은 대기업보다 중소·영세 건설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기피하는 취약업종이기 때문에 다른 업종보다 유보금에 대한 압박이 더 크다”며 “국내 10대 건설사의 자기자본비율은 매출의 60%이지만 중소기업도 평균 20%도 안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 번의 큰 위기를 겪고도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사내 유보금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를 걷어찬 제도”라고 비판했다.

◆미래 성장위한 비상금까지 세금 매기겠다는 정부

정부 방침은 중소기업의 성장 잠재력도 갉아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료품 제조업 5만4800여개를 회원사로 둔 광주전남연식품조합 김석원 이사장(㈜맑은물에 사장)은 “기계 설비가 노후화되서 자동화설비로 바꿔야하는 데 이를 위해선 30억~40억원의 유보금이 필요하다”며 “이 제도가 시행되면 스마트공장 구축도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참석한 기재부 관계자와 여당 의원에게 “제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좀 만들어달라”며 “이 법은 기업을 경영하지도, 성장하지도 말란 애기와 같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의 좌장을 맡은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사내유보금은 미래 투자기회를 발견하거나 코로나19와 같은 경영위기가 찾아올 때 사용하는 일종의 ‘비상금’"이라며 "제조업들은 4차산업의 가속화와 급격한 산업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내유보금을 충분히 적립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이날 "중견기업 자금조달 시 내부 유보자금 활용비중이 65.2%로 상대적으로 높다"며 "자본축적을 가로막아 투자를 위축시키고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내다뵀다. 또 “자본 500억이상 중견기업의 경우 법인세에 투자상생협력세, 유보금 배당간주세 등 ‘3중 과세’로 이익의 약 30%가량을 세금으로 내는 셈"이라며 ”사내유보금이 유출되면 부채비율이 증가해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라고도 했다.

여성 경제인의 타격도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윤숙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은 "여성기업의 99%가 가족형 기업으로 이 법안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게 된다"며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입은 계층 역시 여성경제계인데 기업인의 사업 의지를 정부가 꺾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기술혁신기업 1만8000개 기업을 회원사로 둔 이노비즈협회 이기현 회장(미경테크 대표)은 "2018년부터 중국 베트남 등에 시장을 뺏겨 중소기업들은 골병이 든 상태"라며 "이러한 정부 과세로는 혁신할 수도 없고,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수의 99%, 종사자의 82%가 소속돼 있다"며 중소기업이 흔들리면 나라 경제도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27일 열린 초과유보소득 관련 中企현장 간담회에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의 발언을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지켜보고 있다. 중기중앙회 제공
27일 열린 초과유보소득 관련 中企현장 간담회에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의 발언을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지켜보고 있다. 중기중앙회 제공
◆정상 사업 기업은 과세 안한다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침이 기존 제도와도 상충하는 등 법적 요건에도 미비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무전문가 대표로 참석해 발표를 맡은 구재이 납세자권리연구소장(세무법인 굿택스 대표)은 ”초과유보소득 배당간주 세법안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어느나라도 도입하지 않고 있는 제도“라며 ”이런 세제를 만들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세제로 기록된 ‘지상배당 제도’가 1985년에 폐지된 바 있는 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과세 제도도 이와 거의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제도가 대기업이 아닌 영세·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이라고 했다. 국세청 출신 한 세무사 역시 “세수가 부족해서 급조된 제도 같다”며 "박근혜 정부시절 만들어졌다가 변질된 유보소득 과세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 같다. 기존 법인세 체계를 부인하는 제도로 정부가 바뀌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 고광효 기재부 소득법인세정책관은 "정상적으로 사업하는 중소기업에게 추가 과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항변했다. 초과유보소득 과세는 부동산·주식 투자를 많이 하는 개인 등이 법인을 세워 세금을 줄이는 '꼼수'를 막기 위한 제한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업'에 대한 설명도 내놨다. 고 국장은 "당해연도와 향후 2년간 투자, 고용, 연구개발, 부채 상환 등에 지출할 예정인 금액은 과세 대상에서 빼겠다"며 "정상적인 중소기업이라면 유보소득 과세 제도에 적용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과세 제외 기준은 업계 의견수렴을 좀 더 거쳐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과세 제외 기준을 만들어도 중소기업 부담은 여전히 클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구재이 소장은 "세무 당국이 대부분 중소기업을 상대로 기업이 약속한대로 3년간 투자, 고용 등을 하는지 사후 검증을 한다는 얘기"라며 "검증받는 것 자체가 기업에겐 부담이고 세금 면제가 확실히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개인유사법인이란 '빈대'를 잡으려고 대부분 정상적인 중소기업의 사업 활동을 방해하는 꼴이라는 얘기다. 구 소장은 '핀셋 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성실신고 확인대상 법인이나 이자·배당·부동산임대료 등 사업 외 소득이 일정 비율 이상인 회사만을 대상으로 유보소득 과세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성실신고 확인대상은 주업이 부동산임대업이면서 매출액 중 부동산소득·이자·배당 등이 70% 이상인 기업을 말한다. 그는 "이렇게 적용 범위를 좁혀야 정상적인 중소기업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개인유사법인을 규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용진 의원은 이날 간담회 후 소회를 밝힌 자리에서 "정부가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우는'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며 "중소기업의 현실을 모르고 법안이 만들어졌다면, 이번에 꼭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대규/서민준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