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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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 판결일을 12월로 재차 연기했다. ITC는 배경이나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양사가 판결전 합의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소송 장기화에 따라 부담이 커져서다.

ITC, 두 차례 걸쳐 두 달 넘게 판결 연기

ITC는 26일(현지시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일을 12월10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벌써 두 번째 연기다. 당초 이달 5일로 예정됐던 최종 결정일을 이날로 미뤘었는데, ITC는 12월로 6주 더 연기했다. ITC는 배경이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ITC가 판결을 연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두 달 넘게 미룬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패소로 예비 결정을 내렸고, 예비결저잉 뒤집힌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LG화학의 승소가 여전히 유력하다. 하지만 ITC가 LG화학의 승소를 확정하지 않고 두 차례나 판결을 미룬 것은 소송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대선과 맞물려 정치적인 논란으로 까지 번졌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 이날 ITC가 SK 패소 판결을 한다는 전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엇갈린 전망이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SK이노베이션을 옹호하는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해 대선(11월3일) 전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는 ITC 판결을 정치적 목적으로 무효화하는 것으로, SK이노베이션이 기대하는 시나리오다. 다른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례없이 ITC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독립적·비정당 준사법 기관인 ITC가 이같은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판결을 대선 이후로 미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ITC가 추가 검토를 통해 △LG 승소로 판결하되 미국 내 공익·경제성 평가를 통해 SK 수입금지 조치는 별도로 정하거나 △SK 조기 패소를 전면 재검토 하는 '수정'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부담은 계속 커지는데…양사 합의 나설까

판결이 다시 연기되면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합의 논의가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급한 쪽은 SK이노베이션이다. 만약 이날 패소 결정이 났다면 ITC에 공탁금을 걸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결정 전까지 60일 간 수입금지 조치 효력을 중단해 시간을 끌 예정이었다. 하지만 판결이 다시 연기돼 거부권 카드를 쓸 수 없게 됐고, 향후 연방법원에 항소하더라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기간 수입 금지 조치를 적용받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소송을 종결해야 사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을 통해 "ITC가 이 사건 쟁점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판결 연기와 관계없이 소송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ITC의 예비 결정이 뒤집히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판결이 다시 연기된 것에 대해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LG화학도 이전보다는 합의 필요성은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배터리 사업 분할과 전기차 화재 논란으로 자금 유치와 불확실성 해소가 필요한 상황에서, 배터리 소송까지 장기화하는 것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LG화학은 "ITC 소송에 계속 성실하고 단호하게 임할 것"이라며 "더불어 경쟁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고 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