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지난달 '노동법원 신설 추진' 결정
한 달 지났지만 정부·경제단체엔 통보안돼
"뭘 한다고요? 언제적 이야기인데 그걸 또…" "전혀 들은 바 없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봐야겠네요."

대법원이 지난달 노동법원 신설 재추진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국내 대표 경제단체와 주무부처 고위 관계자에게 진행 경과를 물으니 되돌아온 답이다. 대법원이 16년만에 노동전문법원 설립을 공식화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당사자인 경제단체와 정부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16년만에… 노동법원 다시 꺼내든 대법원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전문법원 추가 설치 여부를 논의하고 노동법원을 우선 신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법행정자문회의 의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대법원은 당일 낸 보도자료에서 "필요한 전문성의 정도, 별도 법원 설치 필요성 등을 종합 고려해 우선적으로 노동법원을 설치키로 하고, 향후 법원행정처에서 구체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노동법원을 설치키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음에도 언론에는 거의 기사화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정감사 등 다른 이슈가 워낙 많은 것도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이겠지만 의아한 대목은 대법원이 노동법원 신설을 공식화한 지 한 달이 넘도록 관계부처 또는 당사자 단체는 대법원의 결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대법원의 '시간표'는 따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법원 설립은 6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노동위원회 제도를 송두리째 흔들수 있는 이슈다. 그런 중차대한 사안을 정부 내에서 이렇다할 공론화 과정도 없이, 심지어 결정 후 한 달이 지나도록 관련 내용이 통보조차 안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노동전문법원은 글자 그대로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도마에 올려 신설을 추진했다. 동력은 노동계였다.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 이르는 장기간 소송이 근로자의 생계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물론 노동법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순환보직 법관들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당시 야심차게 추진했던 노동법원 설립 계획은 경영계는 물론 정부, 노동위원회 모두 반대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1953년 이후 노동위원회가 정착됐고,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익위원 풀이 넓어지면서 전문성과 공익성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주요 반대논리였다.

◆"신속·전문성 부족 이유? 노동위 방식이 나은데…"

그로부터 16년, 산업 형태가 바뀌고 노동시장이 다양해졌지만 당시보다 노동권은 크게 신장됐다. 노사 분쟁은 늘고 있지만 법정다툼까지 가지 않고 조정으로 분쟁을 끝내는 노동위원회에서의 분쟁 종결률은 95%가 넘는다. 노동위원회 조정은 통상 60일이내 종료된다. 통상 법정다툼에 최소한 수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법원 신설 주장의 근거인 '신속성 제고'는 의미를 잃은 셈이다. 전국 법원에 노동사건 전담 재판부도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법원 재추진은 다소 생뚱맞다는 게 민관을 막론한 노사관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노동법원 설립 주장이 나온 배경은 뭘까.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황을 짐작할 만한 한 노사관계 전문가의 귀띔이다. "작년에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노사분쟁 건수는 1만3000건이 넘는다. 노동위원회 조정 기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노동법원이 생기면 이 중 상당수는 법원으로 직행할 것이다. 새로운 법조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2006년 1만명 정도였던 국내 변호사 수는 작년에 벌써 3만명이 넘었다."

◆"14년만에 3배 커진 변호사시장과 무관치 않아"

대법원이 이런 분위기에도 다시 노동법원 설치를 추진하고 나선 데에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냈고, '노동법원 설계자'로 알려진 김선수 대법관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참여정부 당시 노동법원을 추진하다가 논의가 중단된 이후 이어진 보수정권 하에서는 대법원이 노동계의 노동법원 신설 주장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았으나 친노동 성향의 대법원이 들어서면서 다시 추진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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