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도 "수업은 영…" 경제학상 이모저모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윌슨(83), 폴 밀그럼(72)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사제지간이다. 직장에 다니던 밀그럼 교수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듣던 중 윌슨 교수의 수업을 수강한 게 계기가 됐다. 윌슨 교수가 밀그럼 교수에게 직장으로 돌아가는 대신 공부를 더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고, 밀그럼 교수가 이에 동의하면서 사제 지간이 됐다.

윌슨 교수의 또다른 제자 데이비드 크렙스 교수 밑에서 게임이론을 공부한 왕규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두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놨다. 왕 교수의 설명을 중심으로 몇가지 내용을 정리했다.
세번째 경매이론 수상자
밀그럼 교수는 1948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미시간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직후 메트로폴리탄보험사 등에서 계리사로 일했다. 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밀그럼 교수는 직장생활을 5~6년 하다가 윌슨 교수의 권유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다른 학자에 비해 업적은 전혀 떨어지지 않지만 시작이 늦은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 그는 설명했다.

두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번째 경매이론 연구자다. 경매이론에 조예가 깊은 1996년 고 월리엄 비크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2007년 로저 마이어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이미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비크리 교수는 모든 수요자가 동시에 입찰가를 봉인해 제출하는 경매방식을 연구했다.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이 낙찰을 받지만 가격은 두번째로 높게 제시된 것을 적용하는 차가봉인입찰경매는 '비크리 경매'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이어슨 교수는 경매 제도가 판매자에게 가장 많은 기대 이윤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왕 교수는 "두 사람이 이미 받았기 때문에 또 주기에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면서도 "(윌슨과 밀그럼 교수는)하나의 물건에 대한 경매가 아닌 여러 물건을 한번에 경매하는 이론적 근거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받을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FCC의 주파수 경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93년 100여개의 주파수를 한번에 판매하면서 경매방식을 사용했다. 왕 교수는 "FCC가 판매의 이론적인 근거를 만들기 위해 경제학자들에게 컨설팅을 의뢰했다"며 "이 때 윌슨과 밀그럼 교수가 고안한 방식이 채택돼 큰 수익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윌슨과 밀그럼 교수가 고안한 경매 방식은 동시 다중 라운드 오름 경매(Simultaneous Multi-round Ascending Auction)다. 100여개 주파수에 대해 동시에 가격을 써내도록 하되, 다음 라운드에서 처음에 가격을 쓰지 않은 주파수에 대해서도 재입찰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주파수에 새로운 가격이 제시되면 모든 면허에 대해 입찰이 계속된다. 모든 주파수에 대해 새로운 입찰이 없을 경우에 모든 경매가 동시에 중단되는 식이다. 유럽연합(EU) 등 대다수의 국가에서 이같은 방식으로 주파수 경매가 진행된다.
통찰력 있는 윌슨, "수업은 영..."
왕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1년까지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윌슨과 밀그럼 교수의 강의도 다수 수강했다.

왕 교수는 "윌슨 교수는 통찰력이 대단하지만 강의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윌슨 교수가 "by the way"라고 말할 때마다 긴장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윌슨 교수가 이 말을 하면 이미 지나간 주제에 대해 깜빡 잊고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뜻이에요. 쉽지 않은 얘기를 쫑긋하며 듣고 있는데 다시 전 주제로 돌아가니까 조금 부담스럽죠." 반면, 밀그럼 교수의 강의는 "깔끔했다"고 회상했다.

왕 교수는 "윌슨 교수가 경매이론이 아닌 게임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으면 지도교수인 크렙스 교수와 함께 받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1937년 미국 제네바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윌슨 교수는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나 수상 후보로 꼽히는 다수의 학자들을 지도했다. 밀그럼 교수 외에도 2016년 계약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벵 홀스트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와 2012년 협조적 게임이론으로 수상한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가 그의 제자로 꼽힌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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