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이 잦은 해외 기업은 CFO(최고재무책임자)를 다른 회사에서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한 기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인 임원은 다른 기업들이 눈여겨 봤다가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고 스카웃해 가는 케이스가 흔하다. 이와 달리 한국 기업들은 한 회사에서 오래다니는 기업 문화 때문에 CFO의 이직은 빈번하지 않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 사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예전처럼 외부에서 '스타'를 모셔오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인력을 키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위기관리가 키워드로 떠오른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외부에서 영입하더라도 비슷한 업종에서 충분히 검증된 인물로 포커스를 좁히는 경향도 목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포드자동차는 최근 아마존 출신 CFO 팀 스톤을 내보내고 포드 입사 31년차 베테랑인 존 라울러를 새 CFO로 선임했다. 포드는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지난 분기 세전 19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위기에 몰렸다. 지난 8월 구원투수로 새롭게 선임된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취임 후 한 달여만에 재무 수장 교체를 결정했다. 지난 30여년간 포드 중국법인장, 자율주행부문장 등 사내 주요 직책을 두루 섭렵한 신임 라울러 CFO는 CEO와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등 위기 극복에 나설 계획이다.

외신에 따르면 말보로 담배를 판매하는 알트리아, 뉴욕 카네기멜론은행, 대형 자산운용사 존스랑 라살, 석유화학사 옥시덴탈페트롤리움 등 다른 대기업들도 올들어 잇따라 내부 승진 CFO를 임명했다. 지난 4월 선임된 살바토레 맨큐소 CFO는 알트리아에서 30년 가량을 재직했고, 존스랑 라살의 카렌 브레넌 신임 CFO 역시 자사 상업용 부동산 부문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컨설팅 회사 코른페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기업들의 외부 출신 CFO의 영입 비율은 지난해 전체의 18%를 차지했지만 올해 1~6월 CFO 인사에선 그 비율이 9%로 줄어들었다. 201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위기 극복과 뉴노멀 시대에 대비한 사업모델 혁신 등 내부 구조조정을 빠르게 진행하는 데에는 내부 출신 CFO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부출신 CFO는 업계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외부출신 CFO에 비해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변화의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에도 유리하다. 반면 외부출신 CFO의 경우 회사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인적자원관리(HR)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업황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은 리스크를 피하려는 것도 내부 인재를 기용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CFO의 연령도 소폭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른 페리 조사에 따르면 올해 채용된 CFO의 평균 연령은 52세로 지난해 49세보다 올라갔다.

외부에서 CFO를 영입하는 기업들도 과거와 달리 첨단산업 출신이나 다른 업계 출신이 아닌 같은 계통 업계에서 검증된 베테랑을 찾고 있다. 외부출신 CFO 영입이 과거엔 새로운 시각과 혁신·성장을 위해서였다면 최근엔 이유가 반대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3M은 지난 7월 GE헬스케어의 CFO인 모니시 패탈로왈라를 스카웃해 CFO로 임명했다. 패탈로왈라는 1994년 GE그룹에 입사해 여러 계열사의 재무 수장을 맡아 이익을 확대시켜 검증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유통기업 테스코도 최근 식품기업 테이트&라일 CFO출신 임란 나와즈를 CFO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몬델레스 인터내셔널과 크래프트 등 식료품 기업의 재무를 담당한 전문가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