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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다시 세우자
청년들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줄어서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이 만난 청년들의 얘기도 그렇고 통계도 그렇게 말을 한다. 대학 졸업 후 미취업자 비중은 2007년 8.5%에서 올해 15.0%로 상승했다. 취업자 중 1년 이하 단기계약직 비중은 같은 기간 9.0%에서 27.4%로 세 배로 늘었다. 오늘날 청년들은 이전보다 더 낮은 사다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란 만만치 않다. 정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폭 전환하고 있지만 청년들에게는 좌절감만 안겼다.

결국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줄이지 않고 청년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다리 복원의 최선책으로 규제 완화라는,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단체장은 “모든 규제에는 ‘주인’이 있다”며 “강자를 위한 규제가 있는가 하면 약자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규제도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도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고 있는 원격의료 규제는 대표적인 강자의 규제다. 몇몇 택시기사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며 이뤄낸 ‘타다 금지법’은 약자를 위한 규제다.

기성세대가 강자는 강자대로, 약자는 약자대로 뭉쳐서 기득권의 장벽을 쌓는 동안 청년들은 속수무책으로 사다리에서 밀려나고 떨어진다. 미래 일자리의 싹이 잘려 나간 가운데 여기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 입장에서는 이익단체를 조직하고 단체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의 특권이다.
원격진료만 허용해도 일자리 37만개 더 생겨
규제 푸는게 가장 빠르게 사다리 세우는 일
강자를 위한 규제 중 하나가 원격의료 금지다. SK텔레콤은 2014년 나노엔텍을 인수하면서 통신기술과 결합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내놓으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그 결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회가 사라졌다. 원격의료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4만 개에서 최대 37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다.

전체 근로자의 10% 남짓인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보호에 맞춰진 노동법도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한국과 미국, 일본 등 17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 수준이 높을수록 청년 고용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연구위원은 “높은 급여와 고용보호를 받는 정규직을 기업이 적게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법정 근로시간 제한이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자동화 확대로 이어지는 원인이다.

약자를 위한 규제도 만만치 않다. 올 들어 한시적·예외적으로 특정 규제를 완화해 주는 정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사례를 보면 경쟁자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촘촘히 쳐진 약자들의 규제를 살펴볼 수 있다.택시를 이용한 소화물 배달이 대표적이다. 이용자 편의가 높고 택시기사로선 추가 수입이 발생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물 운송 단체가 반대하며 화물자동차법으로 금지됐다.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온라인으로 구입해 배달받는 서비스도 안경사 단체의 반발로 의료기사법 12조에 막혔다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어지고 있는 마트 영업 규제도 약자를 위한 규제로 꼽힌다. 온라인과의 경쟁에 규제까지 이어지며 대형마트 폐점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유통학회에 따르면 대형마트 한 곳 폐점 시 줄어드는 직간접 고용 인력은 1374명에 달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기득권의 내부자가 된 기성세대는 변화를 거부하고 규제 완화를 원하는 청년 세대는 외부자가 돼 규제 완화 등 주요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중심이 된 사회적 협의 구조부터 정치권까지 외부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의 훈련을 지원할 다양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이창양 KAIST 경영대 교수는 “기성세대 이상의 경쟁력을 갖춰주기 위해 청년 및 청소년 세대에 대한 교육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직업 교육을 받는 청년들에게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한 예산 부담이 늘어난 한국이 청년들의 사다리를 마련해 주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관련 보고서에서 “근로소득세 납부자의 1인당 세부담이 2013년 201만6000원에서 2018년 319만9000원으로 63.0% 상승해 증세 부담을 중산층 이상에만 전가하기 어려워졌다”며 “근로소득 공제 축소로 면세자를 줄여 중위소득 이하에서도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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