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H&A(생활가전)사업본부 세탁기 개발실에서는 과거 ‘털털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려면 직접 시제품을 작동하며 성능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세탁 코스를 돌렸다. LG전자 관계자는 “기존 제품과 성능은 같지만 색상·사용 전압 등 일부 특성만 달라진 모델도 실제 테스트를 거쳐야 했기에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LG전자가 시뮬레이션으로 제품을 테스트하는 가상개발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세탁기 소리가 뜸해졌다. 회사 측은 이를 통해 세탁기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이 15%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LG는 최근 미국에 출시한 트롬세탁기에 이 기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가상개발 시스템은 3차원(3D)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소프트웨어로 가전제품을 실제 작동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도록 설계했다. 예측모델에 따라 검증 결과가 바로 나오기 때문에 시간을 대폭 아낄 수 있다. 1시간 이상 걸리는 표준세탁 코스 기준 테스트 결과가 1분 만에 나온다.

LG전자는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일환으로 이 시스템을 개발했다. 새로운 기술과 성능을 갖춘 핵심 제품은 기존처럼 시제품으로 테스트하고, 부분 변경 모델은 가상개발 시스템으로 검증하고 있다.

회사 측은 신제품 테스트 기간이 대폭 줄었을 뿐 아니라 개발인력을 신기술 개발 등 핵심 업무에 투입할 수 있어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TV, 휴대폰, 냉장고 등에도 가상개발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