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핀테크 업체발(發) 인력 채용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 박람회’에서 각 은행 인사 담당자들이 비대면 면접을 하고 있다.  뉴스1
금융권에 핀테크 업체발(發) 인력 채용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 박람회’에서 각 은행 인사 담당자들이 비대면 면접을 하고 있다. 뉴스1
핀테크업체의 채용 인원이 4대 시중은행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은행의 신규 채용 인원이 1년 새 반토막 난 데 비해 주요 핀테크업체의 채용 인원은 두 배로 불어났다. 핀테크업계가 신입사원은 물론 기존 금융권 경력직까지 빨아들이면서 ‘인재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들은 채용 절반 줄이고…핀테크 업체는 두 배 늘리고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은 올해 1054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45% 줄었다. 이에 비해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토스 뱅크샐러드 등 4개 주요 핀테크업체는 4대 은행보다 100명가량 많은 1130명을 채용한다. 전년 대비 91% 늘어난 규모다.

핀테크업체발(發) 금융권 인력 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핀테크업체 대부분은 은행 카드회사 등 기존 금융회사 경력자를 우대한다. 기존 연봉의 1.5배를 주고 스톡옵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도 이직 희망자를 유인하는 요인이다. 시중은행에서 토스로 이직한 김모씨(48)는 “은행의 높은 성과급 등을 고려하면 전체 연봉은 비슷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체의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금융사와 달리 영업에 대한 압박이 거의 없는 것도 강점이다. 핀테크업체들은 모든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합작사업을 위해 핀테크업체에 파견됐던 직원들이 아예 이직을 결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핵심적인 정보기술(IT) 인력 채용 측면에서 은행은 한참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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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장인 익명 앱블라인드의 ‘은행라운지’에 ‘연봉의 30%가 깎이는 조건으로 카카오뱅크로 이직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설문조사가 올라왔다. 응답자 550여 명 가운데 62%는 ‘이직하겠다’고 답했다. 당장의 급여보다 회사 미래와 기업 문화를 우선시하겠다는 댓글도 이어졌다. 응답자들은 “상장을 하면 기업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라며 “휴가, 복지 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기존 은행보다 좋다고 본다”고 답했다.
은행들은 채용 절반 줄이고…핀테크 업체는 두 배 늘리고

“당장의 급여보다 회사 미래 우선”

금융사에서 핀테크 업체로 이직한 사람들은 “연봉은 조금 줄었지만 만족한다”고 입을 모은다. 핀테크 업체 고유의 성과 평가 시스템이 업무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지난해 카드사에서 카카오페이로 이직한 박모씨(33)는 “전 직장에서는 조직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성과급이 정해졌는데 핀테크 업체에서는 내가 하는 정도에 따라 해마다 연봉을 다르게 계약할 수 있어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코어뱅킹’ 등 핵심 업무를 다룰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코어뱅킹은 금융회사의 모든 정보 흐름을 주관하는 핵심 정보기술(IT) 시스템을 말한다.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는 책임감과 자부심도 크다. 시중은행에서 카카오뱅크로 이직한 이모씨(38)는 “본점과 영업점을 돌아가며 순환근무를 하던 전 직장과 달리 입사 때 맡았던 직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은행원도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업체는 기존 금융사와 달리 정해진 연봉체계가 없다. 호봉제에 얽매이지 않고, 성과에 따라 거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소수 핵심개발자의 연봉은 6억원에서 많게는 8억원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어지간한 실리콘밸리 기업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국 4대 IT 공룡인 ‘MAGA(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의 10년차 이하 기술직 연봉은 13만~40만달러(약 1억5000만~4억6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 격차 갈수록 벌어질 듯

개별 핀테크 업체의 채용 인원은 이미 은행을 앞지르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497명에서 올해 307명으로 채용을 줄였고, 우리은행의 채용 인원은 750명에서 197명으로 4분의 1로 줄었다. 코로나19와 디지털화로 지점 위주의 대면 영업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토스는 연말까지 500명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자산관리 플랫폼을 운영하는 뱅크샐러드도 올해 채용 목표를 시중은행보다 많은 300명으로 잡았다. 9월 기준 전체 직원 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빅테크(대형 IT기업)의 선두주자인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도 꾸준히 채용 규모를 늘리고 있다.

주요 핀테크 업체들은 ‘채용의 질’을 높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회사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재를 채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토스는 채용 과정에서 ‘그린하우스’라는 해외 인력 채용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좋은 평가를 받은 신입 직원 채용에 관여한 기존 직원은 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반대의 경우에는 채용 인력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다. 객관적인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을 뽑을 확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높은 연봉과 복지 수준으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금융사들의 위상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은행과 핀테크 업체 간 우수 인재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갈수록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송영찬/김대훈/정소람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