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투자형 지주사 SK(주)가 잇달아 투자 ‘잭팟’을 터뜨리면서 그 비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주)는 지난 17일 글로벌 물류회사인 ESR 보유 지분 11.0% 중 4.6%를 4800억원에 매각했다. 투자 3년 만에 일부 지분을 팔아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성과를 거뒀다.

SK(주)는 ESR 외에도 바이오, 반도체 소재 등의 분야에서 인수하거나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손을 대는 곳마다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업계에선 △전문 인력의 독자적 투자대상 발굴 △철저한 현장 검증 △포트폴리오 최적화 등 SK(주)의 전략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답사만 수백번…'투자고수' SK(주) 만들다

투자전문 인력만 100명

홍경표 SK(주) 브랜드담당 부사장은 ‘발로 뛰는 투자’를 회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는다. 100여 명에 달하는 투자전문 인력이 현장을 찾아가 직접 대상을 발굴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은행(IB)의 소개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SK(주)는 직접 주요 시장을 찾아다니며 투자처를 발굴하고 분석한다.

ESR도 현장 답사를 통해 찾아낸 ‘보석’이었다. SK(주) 인프라섹터 투자팀은 2017년 중국의 물류기업 투자 계획을 세웠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 급팽창에 맞춰 물류기업도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대부분 비상장기업이어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

인프라섹터 투자팀은 중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을 돌며 투자 기회를 찾았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무작정 미팅을 요청한 뒤 수백 번의 현장 답사를 거쳤다. 조동근 프로젝트리더(PL)는 “ESR은 아마존 JD닷컴 등 200여 개 우량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었다”며 “경영진의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인한 뒤 투자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굳혔다”고 말했다.

ESR에 4900억원을 투자한 SK(주)는 지분 11%를 확보했다. 그 가치는 1조2600억원으로 3년 만에 두 배 넘게 상승했다. 잔여지분(6.4%)의 가치도 7400억원에 달한다.

미래 유망산업에 분산투자

SK(주)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최적화를 또 다른 원칙으로 내세운다. 매년 조(兆) 단위의 투자를 집행하는 SK(주)는 기회가 왔을 때 적기에 자금을 집행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을 세워 놓는다. SK(주) 관계자는 “무리한 인수보다는 경영권을 확보할 정도로 투자하거나, 재무적 투자자로서 최소 지분만 보유해 재원을 아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미래 성장산업 분야에 분산투자해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2017년 초 LG로부터 실트론을 인수할 때 지분 100%를 취득하는 대신 경영권 확보 수준의 지분만 인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SK(주)가 인수하기 전인 2016년 8360억원이던 SK실트론 매출은 2019년 1조543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독자적 딜 가능한 지주사” 평가

2016년 이후 SK(주)의 투자 내역에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포트폴리오 구성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바이오, 반도체 소재, 2차전지 소재, 모빌리티(이동수단), 에너지, 물류 인프라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망산업이 망라돼 있다. SK(주)는 투자 영역을 △기존 주력 사업 △신성장 사업 △시딩(초기 투자) 사업 등 세 가지로 구분해 균형을 맞춘다.

이번 ESR 지분 매각도 포트폴리오 균형을 위해 내린 전략적 판단이다. ESR의 지분 가치가 앞으로 더 높아질 수 있지만 바이오·제약, 인공지능(AI) 등 또 다른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기 위해 매각을 결정했다. 투자의 선순환을 위해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SK(주)는 투자자문사 없이 독자적으로 인수합병(M&A) 딜을 검토할 만큼 전문 역량을 갖춘 지주회사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