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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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가 이달에만 3·10년 만기 국고채(국채) 5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적자국채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국채가격 하락(국채금리는 상승)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정부 재정확대가 시장금리 상승을 불러와 소비·투자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 효과'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8월 말부터 국채물량 쏟아내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1~4일에 3년 만기 국채선물을 3만7139계약(액면가 3조7139억원)을 순매도했다. 10년 만기 국채선물은 1만4347계약(액면가 1조4347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달에만 3·10년물 국채 5조1486억원어치를 매각한 것이다.

외국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이 출렁인 지난 3월만 제외하고 올들어 지난 7월까지 매달 국채선물을 순매수했다. 하지만 8월에는 3·10년물 국채선물을 7만5754계약(액면가 7조5754억원) 순매도한 데 이어 이달에도 상당한 규모의 매물을 내놨다. 지난달 순매도 규모는 월간 기준으로 역대 네 번째로 많았다. 외국인은 지난 8월28일의 경우 3년물 국채선물과 10년물 국채선물을 각각 3만1453계약, 1만1802계약 순매도했다. 일간 기준으로 각각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순매도였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그동안 쌓아 놓은 국채선물 매수 포지션을 청산한 영향도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 순매도 물량을 압도적으로 늘린 결과로 해석했다.

외국인이 '폭풍 매도'에 나서면서 지난 8월 5일 사상 최저치(연 0.795%)로 떨어졌던 3년 만기 국채금리가 이달 1일 연 0.977%까지 뛰었다. 지난 4월 29일(연 1.006%) 후 넉 달 만에 가장 높았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이달 1일 연 1.582%로 5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채선물을 매도한 직후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일부 작용하면서 원·달러 환율도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했다. 지난 4일 원·달러 환율은 1원30전 오른 1189원59전에 마감했다. 지난 8월 4일(1194원10전) 후 최고치다.

◆"국채선물 거래많은 10개국…한국만 양적완화 채택 안해"

외국인이 발을 빼는 것은 국채가격이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퍼진 결과다. 올해 4차 추경 편성이 결정된 데다 내년 예산안(555조8000억원)은 올해보다 8.5% 늘었다. 그만큼 적자국채 발행량도 예년 대비 큰 폭 불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펴는 데 주저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은이 지난달 31일 국채 1조5000억원어치를 단순매입한 직후에도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도 움직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Fed),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국채 매입 등에 나서면서 미국·유럽 국채가격 변동성이 한국보다는 크지 않다"며 "한국 국채가격 낙폭이 다른 나라 국채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자 국채선물을 순매도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매력이 떨어진 한국 국채를 순매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허태오 삼성선물 연구원도 "국채선물을 거래하는 외국인은 대형 채권 펀드 운용사 또는 미리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원자재 등에 분산 투자하는 추세추종형(CTA) 헤지펀드 등으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채선물을 상장해 외국인이 거래할 수 있도록 개방한 미국 캐나다 독일 한국 호주 일본 스페인 등 10개국에 달한다"며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등 시장금리를 제어할 수단이 없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한은 통화정책 교란하나

이처럼 금리가 뛰면서 구축효과 우려도 커졌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시장금리를 밀어 올리면서 나타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들어 연 1.25%에서 연 0.5%로 내렸지만 외국인의 국채선물 매도로 되레 금리가 다시 뛰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자영업자 이자비용 부담이 보다 악화되는 등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