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모든 금융회사들이 투자 원금을 전액 배상하라는 권고를 수용하기로 했다. 금융 투자 손실과 관련해 100% 배상이 이뤄지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투자자들은 판매사로부터 원금을 돌려받게 됐다. 그러나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 차원”

27일 우리은행과 신한금융투자,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는 이사회를 열어 라임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투자 원금 전액 배상안을 받아들이기로 의결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이사회에서 결정을 한 차례 연기하면서 법률 검토 등을 면밀히 진행해 왔다”며 “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 차원 및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도 “검찰 수사와 형사 재판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투자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분쟁조정위원회 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감안한 은행의 대승적 결정”이라고 했다. 단 하나은행은 향후 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구상권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신한금융투자 이사회는 “지난 5월 라임펀드 선보상 때 분쟁조정 결과를 반영해 보상금 차액을 정산하기로 한 고객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수락을 결정했다”면서도 “분쟁조정위가 적용한 착오취소 법리와 기초사실들은 여전히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라임펀드 판매사, 사상 첫 투자금 100% 배상
지난 6월 금융감독원은 은행 2곳과 증권사 2곳 등 라임펀드 판매사 4곳에 투자 원금 100%를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투자 제안서에 허위 기재된 내용을 판매회사가 그대로 전달해 투자자의 착오를 불렀기 때문에 계약 취소 대상이라는 판단이다. 반환 대상 금액은 우리은행 650억원, 하나은행 364억원, 신한금융투자 425억원, 미래에셋대우 91억원, 신영증권 81억원(사전에 반환 결정) 등 모두 1611억원이다.

금융당국 전방위 압박에 ‘백기’

판매사들이 ‘100% 반환’이라는 유례없는 결정을 받아들인 것은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게 업계 해석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판매사들이 라임 펀드 피해 배상 권고안을 수용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국과 각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 판매사들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이번 결정은 금융업계에 부정적인 선례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앞으로 투자 상품 관련 사고가 생길 때마다 운용사가 아니라 판매사가 이를 대신 물어주는 관행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불완전 판매가 아닌데도 우선 ‘물어달라’고 하고 보는 식의 민원이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 투자자의 투자 경력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100% 배상 결정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하나은행 이사회는 이날 디스커버리펀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에 대한 추가적 소비자 보호 조치도 마련했다. 해당 펀드의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선제적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디스커버리펀드는 50%를,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70%를 우선 지급한 뒤 향후 펀드가 청산되는 시점에 최종 정산해주기로 했다.

정소람/김대훈/오형주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