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대출창구.  /뉴스1
시중은행 대출창구. /뉴스1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대출 원리금 상환 기일을 한번 더 미뤄주기 위한 논의가 얼마 전 금융위원회의 제안으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몇몇 금융사들은 “이자 유예는 더 이상 안된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자마저 받을 수 없다면 대출이 얼마나 부실화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7일 정부가 발표한 ‘2차 대출 만기 연장 방안’은 금융사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무시됐다. 아무런 조건이 원리금을 최대 6개월 더 늘려주기로 하면서다. 여신 담당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정상기업과 부실기업을 구분해서 모니터링을 하는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여신업무 관계자는 “은행이 건전성을 관리할 때 이자납입을 유예받을 경우에는 ‘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며 “이런 기업을 정상이라고 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하라는 건 앞뒤가 안맞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은 감면조치가 끝나는 시점에 부실 대출이 무더기로 드러나며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걱정까지 내놓는다. 최대 1년간 차주의 경영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어서다.

정부는 대출 만기 연장을 신청하는 기업들의 금액과 건수가 매달 줄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금융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형 은행 관계자는 “대출 마다 만기가 다르고 미뤄준 대출의 총량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분석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코로나19 2차 유행으로 앞으로 대출 원리금을 유예해달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신용카드사와 캐피털업계를 비롯한 2금융권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카드사 관계자는 “은행들은 담보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카드사들은 거의 모든 대출이 신용대출”이라며 “1년간 ‘깜깜이 대출’을 해줬다가 파괴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은행이 무작정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주면 카드사에 돈을 빌릴 때 실제로는 상환능력이 안 되는데도 정상 차주로 분류돼 추가대출을 해주게 된다”며 “이런 일들이 조금만 생겨도 곧바로 자산건전성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2금융권 중심의 금융회사들은 1년간 대출 상환이 연기된 이후 한꺼번에 대량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상황까지 염두해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내놓은 방식의 단순 재연장을 중단하고 이자만이라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며 “국민적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차원은 원금 상환 유예만으로도 부응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박진우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