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반도체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최근 1년간 부침을 겪었다. 세계 5위권 스마트폰 업체 중국 비보에 엑시노스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납품해 고객사를 확대한 건 ‘작지 않은 성과’였다.

하지만 프리미엄 AP 시장에선 퀄컴은 물론 중국 화웨이에도 밀렸다. ‘세계 최초 5세대(5G) 통신칩셋’ 타이틀을 ‘기린 990’(화웨이)에 빼앗긴 게 대표적이다. 자사 스마트폰 갤럭시S20와 갤럭시노트20의 한국·미국 출시 모델엔 엑시노스 대신 퀄컴의 AP인 스냅드래곤865 시리즈가 들어갔다. 시스템LSI사업부가 와신상담하며 준비 중인 반격의 카드가 내년 출시할 ‘엑시노스1000’(가칭) AP다. 미국 반도체 설계전문 회사인 AMD와 협업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확 높인 게 장점으로 꼽힌다.
삼성의 야심작…퀄컴보다 3배 빠른 '스마트폰 두뇌' 내년 초 출시

英 ARM 대신 美 AMD와 협력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1분기 성능이 대폭 향상된 차세대 스마트폰용 엑시노스 AP를 내놓는다. 차세대 엑시노스의 가장 큰 변화는 동영상 재생, 고화질 게임 실행 등에 필수적 반도체인 GPU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GPU는 ‘스마트폰 성능의 가늠자’로 인식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AP엔 영국 반도체 지식재산(IP)·설계 전문 업체 ARM의 ‘말리’ GPU를 썼다. 말리는 전력이 많이 드는 데이터 처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엑시노스가 적용된 갤럭시폰으로 고사양 게임을 하거나 고용량 동영상을 볼 때 ‘발열이 심하다’는 불만이 쏟아진 이유다.

강인엽 사장, “그래픽 기술 혁신 가속”

삼성전자는 미국 AMD와의 협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차세대 제품에 AMD의 ‘RDNA’ GPU를 넣는 걸 추진 중이다. AMD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개발자 및 경영자’로 불리는 리사 수 박사가 이끄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다. 중앙처리장치(CPU) 사업에선 인텔, GPU에선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는 AMD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당시 “차세대 모바일 시장에 혁신을 가져올 획기적인 그래픽 제품과 솔루션에 대한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며 “AMD와 함께 모바일 그래픽 기술의 혁신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AMD와의 협업과 함께 자체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 나섰다. 지난달 미국법인의 R&D 조직인 ‘삼성 오스틴 R&D센터(SARC)’와 ‘어드밴스드 컴퓨팅 랩(ACL)’은 GPU 설계팀 인력 보강 등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 조직은 삼성 스마트폰·자동차용 AP 성능을 높일 차세대 제품 설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출시 갤럭시 프리미엄폰에 적용

차세대 엑시노스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크다. 최근 SNS 등을 통해 삼성전자가 AMD와 협업해 개발한 차세대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 865의 성능을 비교한 결과가 유출됐는데, 엑시노스의 처리속도가 스냅드래곤보다 세 배 이상 빨랐다.

새 칩은 하반기 본격 가동되는 삼성전자의 최첨단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라인에서 생산될 전망이다. 내년 1~2월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 전략 스마트폰에 적용될 것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지난 1분기 글로벌 AP 시장 ‘빅3’에 들지 못했던 삼성전자가 퀄컴의 차세대 칩 ‘스냅드래곤 875’, 애플의 ‘A14’ AP 등을 추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인 만큼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