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엔 답을 주저했네요"…AI면접관에 속내를 들켰다
“(나는) 주변 환경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한다.” “규칙이 있으면 모두 지키려고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런 편이다’라는 답변을 선택했다. 금융회사 취업준비생이라고 가정하고 응한 모의 인공지능(AI) 역량평가였기 때문이다. 5분간 짧은 질문에 답하자 결과가 나왔다. “활발하고 창의적인 성향입니다. 하지만 위 두 가지 질문에 응답할 때는 주저했네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카드 뒤집기 게임이 이어졌다. 한 장 뒤집을 때마다 30점을 주지만 폭탄 카드에 손대면 한 번에 500점을 잃는다. ‘딱 한 장만 더’ 하며 뒤집은 카드는 어김없이 폭탄이었다. 결국 -300점으로 게임을 마쳤다. 이 서비스를 개발한 AI 채용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간단한 게임을 하는 동안 AI가 지원자의 리스크 회피 성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이 하반기부터 AI 채용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려워진 대규모 시험·면접 절차를 보완하기 위한 차원이다. 머지않아 AI가 기업에 역으로 인재 채용을 제안하는 등 기존 채용 방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올 하반기 공채부터 자기소개서를 평가할 때 AI를 활용할 계획이다. 상반기에 시범테스트를 거쳤다. 신입사원 채용에 AI를 공식 도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은행은 하반기 공채에서 면접 대상자들에게 처음 적용한다.

농협은행도 지난 6월 인턴사원을 채용할 때 AI 시스템을 적용했다. 채용 결과를 분석한 뒤 하반기 공채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한·국민·기업·부산·경남·제주은행과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도 하반기 AI 채용을 계획하거나 이를 위한 사전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는 “현재는 문서 표절과 거짓 진술 여부, 지원자 기본성향 파악 등에 참고하고 있지만 데이터가 더 쌓이면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AI 인재 추천’ 서비스도 나올 전망이다. AI로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회사 인재상에 맞는 구직자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자소서 표절 잡고, 면접 진정성 판단…AI가 'OK'해야 합격

금융권에 인공지능(AI) 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채용 방식의 대안이 될 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지원자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비대면으로 모든 채용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응시자가 늘어날수록 구직자 분석이 더 정교해지는 선순환 구조도 매력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런 AI 채용의 강점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질문엔 답을 주저했네요"…AI면접관에 속내를 들켰다

어떻게 지원자 평가할까

AI 기술은 채용 전 과정에 활용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서류 및 자기소개서 전형이다. 지원자가 낸 서류를 AI가 스크리닝(검사)하는 것이다. 오탈자, 비문, 동어 반복 등을 잡아내는 건 기초적인 수준이다. 방대한 양의 기존 취업 서류, 자소서 등을 검토해 표절이 의심되는 부분을 감지한다. 학력, 가족 관계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자동으로 감추는 기술도 있다. 면접위원이 학연·지연을 고려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절차다.

성향 및 역량 평가에도 AI 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성향 평가는 직무 적성평가와 비슷한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답해야 한다. 문항별 응답 속도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뜸을 들인 질문을 따로 뽑아볼 수 있어 신뢰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게임을 활용한 역량 평가도 보편화하고 있다. 얼굴 사진을 보고 감정 상태 맞히기 게임(감정 평가 능력), 이전 카드 위치 맞히기 게임(기억력), 주어진 공을 무게에 따라 줄을 세우는 게임(추리력) 등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주어진 단어를 보고 1초 안에 ‘O, X’를 맞혀야 하는 순발력 게임도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이라는 단어가 초록색으로 나오면 ‘X’를 곧바로 찍어야 한다. 각 게임을 되풀이해 연습하면 상당수는 ‘PERFECT(완벽)’라는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성향에 따라 특정 게임은 여러 번 반복해도 ‘GOOD(좋음)’ ‘CHEER UP(분발 필요)’ 이상을 받기 어렵다. 꾸며내거나 과대포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AI 채용을 경험해 봤다는 한 구직자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기 때문에 대규모 시험보다 덜 긴장하게 되는 점이 좋았다”며 “최근에는 AI 채용을 함께 준비하는 구직 스터디도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AI를 통한 비대면 면접도 이뤄지고 있다. 웹캠과 스피커를 통해 구직자의 눈빛, 표정, 목소리와 사용 단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평소보다 긴장한 상태인지, 답변할 때 거짓말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는지, 언어 습관은 어떤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AI를 활용한 ‘역채용’ 서비스도 조만간 나올 전망이다. 한 AI 채용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쌓인 빅데이터와 머신러닝(기계 학습) 기술을 적용해 조만간 ‘AI 인재추천’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라며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입력하면 AI가 여기에 적합한 구직자를 찾아 매칭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채용 과정에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도 맞춤형 인재를 찾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검증 시간 더 필요해”

AI가 기존 채용 과정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아직 AI의 학습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회사의 인재상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획일적인 인재를 뽑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한 금융사의 채용담당자는 “AI 분석 자료를 보고 면접에 들어가면 선입관을 더 갖게 된다는 면접위원도 있다”며 “면접 과정에서 의외의 ‘원석’을 발견하는 등 사람의 직감으로만 가능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금융사는 AI 평가의 신뢰도 검증 작업을 병행 중이다. AI 평가를 거친 신입 직원들을 장기 관찰하며 업무 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내부 평가가 좋은 기존 직원들에게 AI 평가를 치르게 한 뒤 실제 능력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테스트하는 곳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공채는 공정성과 형평성이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며 “신뢰도 검증 작업이 끝나면 AI 채용이 더욱 보편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소람/김대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