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D램 생산업체 미국 마이크론의 데이브 진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3일 열린 한 온라인 투자행사에서 “오는 9~11월 매출이 회사가 제시한 전망치(54억~56억달러)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한 달 보름 전까지만 해도 “서버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마이크론의 태세 전환에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D램 현물가 30% 급락…'3중苦' 몰린 메모리반도체 기업

99거래일간 안 오른 D램 현물가

D램 가격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현물가는 고점 대비 30% 빠졌고 기업 간 계약 가격인 고정거래가도 9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매수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영향이 크다. 내년 1분기는 돼야 D램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1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 D램 범용 제품인 DDR4 8G 현물 가격은 2.54달러를 나타냈다. 지난 4월 3일 3.64달러를 기록한 이후 99거래일 동안 한 번도 반등하지 못했다. 현물가는 실시간 거래가격으로 고정거래가격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7월 D램 고정거래가도 3.13달러로 전달보다 5.44% 떨어졌다. 고정거래가가 하락한 건 2019년 10월(-4.42%) 후 9개월 만이다. 업계에선 최근 현물가가 계속 낮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8월 고정거래가도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

최근 가격 하락세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영향이 크다. 상반기엔 상황이 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데이터 사용량이 늘면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클라우드업체들이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모바일용 제품 대신 서버 D램 공급을 늘리며 수요에 대응했다. 상반기 D램 고정거래가가 17.8% 상승한 배경이다.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로나19에 따른 ‘공급 차질’ 가능성까지 감안해 D램을 적정량보다 많이 구매했던 클라우드업체들이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클라우드업체의 서버 D램 재고가 5월 ‘4~5주’ 수준에서 최근 ‘7~8주’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급할 게 없어진 수요업체들이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서 공급사도 낮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6월 말 기준 삼성전자는 12조3934억원, SK하이닉스는 5조8141억원 규모의 반도체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보다 삼성전자 재고는 4.0%, SK하이닉스는 9.8% 늘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이달 17일 공개한 ‘대(對)화웨이 반도체 차단 조치’ 여파로 반도체업체들이 화웨이에 D램, 낸드플래시를 공급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생겼다. 가격 하락 전망이 더 우세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첨단 제품으로 수익성 악화 방어

지난달 말 열린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조정 국면이 과거 하락기 때처럼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5세대(5G) 스마트폰 출시에 따라 모바일 D램 수요가 살아나고, 서버 D램 구매도 꾸준할 것이란 예상에 근거를 뒀다.

시장에선 D램 가격 하락세가 최소 연말까지 이어지고 내년부터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애플, 화웨이 등 주요 업체가 프리미엄 제품 출시 시점을 연말로 늦춘 영향이 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3분기 서버 출하량이 4.9% 감소하면서 D램 출하량과 가격이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생산성 높은 최첨단 제품을 출시해 수익성 방어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해 생산할 10나노미터 4세대(1a) D램은 3세대 D램보다 생산성이 20%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플래시에서도 현재 주력 제품인 96단 제품에서 128단으로 고도화되면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상쇄할 것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같은 제품을 팔아도 이익 증가폭이 커진다”며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 실적은 하락하겠지만 그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