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은 거산정밀 대표(오른쪽)와 강성길 사장이 새로 선보인 누드군밤구이기를 설명하고 있다.
박혜은 거산정밀 대표(오른쪽)와 강성길 사장이 새로 선보인 누드군밤구이기를 설명하고 있다.
구로동의 거산정밀은 매실씨 제거기, 멧돼지 포획틀, 자동 밤까는 기계에 이어 최근엔 누드군밤기계도 개발해 국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들 기업의 경영자를 만나봤다.

서울 고척교 부근에 거산정밀이 있다. 공장에 들어서면 CNC머신 머시닝센터 선반 밀링 용접기 등 10여 종의 기계가 놓여 있다. 한눈에도 쇠를 깎아 기계나 기계부품을 만드는 업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층 사무실 한쪽엔 각종 완제품과 반제품이 빼곡히 놓여있다. 이 회사는 밤까는 기계, 매실씨 제거기, 멧돼지 포획틀 등을 생산한다. 박혜은 대표(59)와 남편인 강성길 기술총괄사장(61)이 운영하는 가족기업이다. 아들은 생산과 납품을 담당한다. 일감이 몰리면 선반기술자, 용접기술자 등 외부 전문인력을 활용한다.

매실씨 제거기·멧돼지 포획틀, 아이디어 '톡톡'…10분 만에 굽고 까는 '누드 군밤 구이기'도 개발
이 회사는 최근 밤을 굽고 까는 기계를 개발했다. 제품명은 누드군밤구이기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스테인리스스틸 원통 안에 생밤을 넣은 뒤 스위치를 누르면 8분 만에 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다. 그 뒤 원통이 빠르게 역회전하면 내부에 칼날처럼 날카롭게 돌출된 길쭉한 날개에 밤이 부딪치면서 껍질이 까진다. 껍질 부스러기는 구멍을 통해 바닥으로 떨어지고 익은 밤은 스크루에 의해 밖으로 밀려나온다.

박 대표는 “한꺼번에 밤을 6㎏까지 넣을 수 있다”며 “스위치를 켜면 10분 안에 군밤이 90% 이상 탈피돼 밖에 설치된 바스켓에 담기는 자동기계”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밤까는 기계를 국내에 공급하면서 일본으로 2000대가량 수출했는데 앞으로 이 신제품으로 국내외 시장 개척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주요 시장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밤 재배 농가 등이다. 해외 시장은 일본 미국 캐나다 등지를 겨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복숭아씨 자두씨 대추씨를 제거하는 기계도 개발했다. 기존에 생산하던 매실씨 제거기를 응용한 것이다. 복숭아나 대추를 홈에 넣고 위에서 뾰족한 피스톤으로 누르면 순식간에 씨만 구멍으로 떨어진다. 과일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다. 수동기계와 반자동기계가 있다. 박 대표는 “기존 매실씨 제거기를 응용한 제품”이라며 “과일 크기에 맞는 바스켓을 장착하면 복숭아씨 자두씨 대추씨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실씨 제거기는 우메보시 등 매실 요리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제품은 가족 간 협업에서 나온다. 남편과 30년 이상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온 박 대표가 아이디어를 내면 강 사장은 이를 제작한다. 깔끔한 디자인은 박 대표의 몫이다. 생산은 강 사장과 아들이 담당한다.

강 사장은 고향에서 10대 후반 상경해 서울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27세 되던 1986년 독립했다. 자동차부품과 산업기계부품 등을 제조했다. 젊은 시절 선반 밀링 프레스 등 각종 기계를 다룬 것은 물론 모터 기어 등의 부품도 익혔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기계를 다루다 보니 아이디어만 있으면 어떤 기계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강 사장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기름밥을 먹은 지 40년이 넘었다”며 껄껄 웃었다.

거산정밀은 멧돼지 포획틀도 개발했다. 멧돼지가 도심에 종종 출몰하자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쥐덫의 원리를 활용했다. 틀 안에 멧돼지가 좋아할 만한 먹이를 넣어두고 멧돼지가 이를 건드리면 순식간에 문이 잠기는 제품이다. 거산정밀이 처음부터 나만의 제품으로 승부를 건 것은 아니다.

각종 기계부품을 임가공했는데 제조업 침체로 일감을 따내기 어려워지자 내 제품을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박 대표는 “인건비 상승으로 소득이 줄고 있는 농가에 자동화된 기계를 공급하면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며 “다양한 식품 관련 기계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