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 체인인 로드앤드테일러(1826년 설립)가 이달 초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낸 것을 포함해 △미국의 니먼 마커스(1907년)와 JC페니(1902년) △독일 갈레리아 카우프호프(1879년) △영국 데버넘스(1778년) 등 세계 유수 백화점이 줄줄이 파산했다. 지난 1분기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가량의 영업 손실을 낸 미국 메이시스도 직원 3900여 명을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국 백화점들의 선방은 그런 측면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다른 선진국 백화점이 도산하는 시점에 바닥을 찍고 성장세로 돌아섰다. 직매입이 적은 한국 특유의 유통 구조, 서점과 영화관 맛집 등이 어우러지는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경쟁력이 빠른 회복의 비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적은 재고 부담으로 생존 기반 마련

100년 역사 美·英·獨 백화점 줄파산…롯데·현대·신세계 '선방' 비결은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국내 대형 백화점 3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30% 가까이 감소했지만, 4월부터는 감소폭이 크게 줄었다. 특히 현대와 신세계는 하반기 들어 매출이 전년 대비 플러스로 돌아서는 등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의 6월과 7월 매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2%, 0.3% 늘었다. 신세계도 3.0%, 0.9%씩 증가했다. 업계 1위인 롯데도 5월부터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매출 감소폭이 30%를 넘나들었던 3월에 비해 완연한 매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 광복절 연휴 매출은 지난해보다 15% 넘게 늘었다”며 “명품과 가전이 이끄는 매출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가별로 다른 백화점 유통 구조가 운명을 가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중소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미국 백화점의 직매입 거래 비중은 80~90%에 달한다. 백화점이 직접 상품을 사들여 쌓아 놓고 고객에게 파는 방식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급감하고, 재고가 폭증하면서 백화점 파산으로 이어졌다.

반면 한국의 백화점은 ‘특약 매입’ 중심으로 위기에 강했다는 평가다. 외상 매입한 상품을 판매하고 팔리지 않은 상품은 반품하는 유통 형태다. 국내 백화점산업이 태동할 당시 일본 백화점 모델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특약 매입 구조로 인해 재고 부담을 납품 업체에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역설적이게도 극단적인 불황 국면에서 백화점의 재무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매출도 늘었다

비대면 거래와 전자상거래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백화점업계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하지만 업계는 오프라인 유통채널로서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 백화점처럼 복합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 대규모 쇼핑몰과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관, 아이스링크, 수족관 등을 갖춘 경우가 드물다”며 “이제는 일본이 국내 모델을 참조하기 위해 찾아오는 수준이 됐다”고 전했다.

백화점의 온라인 매출 비중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7.7%에서 올해 11.3%로 늘어났다. 현대백화점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10%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도 그룹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을 통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백화점 매출 반등을 명품과 가전이 이끌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백화점 주요 매출원인 패션·잡화 부문보다 마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신애 KB증권 연구원은 “마진이 낮은 명품과 가전 매출이 백화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며 “하반기 백화점 수익성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