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조30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을 정도로 떨어진 상태여서 돈을 빌리려는 수요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주택자금에 동학개미까지
17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3일 기준 121조488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120조1992억원)에 비해 9영업일 만에 1조2892억원 늘었다. 지금 속도라면 이달 말까지 2조원대 증가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들 대출의 상당 부분이 주택 매매·전세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은 정부 규제가 강하지만 신용대출은 별다른 조건이 없고 금리도 낮은 상태”라며 “비대면으로 손쉽게 신용대출을 받아 주택자금으로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와 주식 투자에 뛰어든 ‘동학개미’들도 신용대출 규모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할 때는 자금 용도를 주택 구입, 전세자금 반환용, 생계자금, 투자자금 등 구체적으로 써야 하지만 일단 대출이 나가고 나면 확인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렇게 낮은 금리는 처음”
지난 14일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1.74∼3.76%,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2.03∼4.27%로 집계됐다. 과거 신용 1등급에 고액 연봉을 받는 극소수의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을 때가 간혹 있었지만, 요즘은 웬만한 신용 1~2등급 직장인이면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입사 이후 전반적인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보다 저렴해진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지난달 5대 은행에서 실제 집행한 신용대출의 평균 금리 역시 연 2.38∼2.85%에 불과했다. 은행 직원들조차 “이렇게 좋은 금리는 보기 힘들다”며 앞다퉈 신용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의 ‘금리역전 현상’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다. 은행들이 신용대출 금리의 기준으로 삼는 금융채 6개월물 금리는 1년 새 0.719%포인트 떨어진 반면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인 금융채 5년물 금리는 0.04%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또 주택담보대출에는 신용대출과 달리 담보설정비용 등 고정비가 추가로 반영된다. 인터넷은행을 중심으로 불붙은 대출금리 인하 경쟁도 영향을 미쳤다.
당국, 신용대출 억제 나서나
은행권 관계자들은 “신용대출이 더 불어나면 정부 규제가 강화될 수 있어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당장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금융권에 ‘돈을 풀라’고 요청하는 상황에서 신용대출을 억제하면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이유가 경제 사정 악화 때문인지, 주식 투자용인지, 부동산 투자용인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이 재무건전성 관리를 위해 ‘자체 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최근 일부 은행은 신용대출 금리를 올리거나 한도를 낮추는 등 문턱을 높이고 있어 신용대출 급증세가 차츰 진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국계 글로벌은행 HSBC은 올들어 주가가 반토막났다. 홍콩 증시에선 50.3%, 영국 런던 증시에선 48% 하락했다. 날아간 시가총액은 약 800억달러(약 93조5500억원)에 달한다. 금융업 약세 탓이 아니다. 지난 6개월간 JP모간, 씨티은행 등 라이벌 기업은 주가가 1~3% 오른 반면, HSBC 주가는 45.9%(홍콩증시 기준) 빠졌다.최근 HSBC 주가 폭락의 원인은 미국과 중국간 갈등 사이에서 ‘줄타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등 예민한 정치 사안을 놓고 중간에 끼어 양쪽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美·中 “HSBC, 누구 편인지 선택하라”HSBC는 최근 중국과 미국 당국의 제재를 각각 받을 수 있다는 의혹에 휩싸여 주가가 25년래 최저치까지 밀렸다. 지난 19일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가 “HSBC가 중국 정부가 작성하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일엔 HSBC 미국의 금융제재 대상과 불법 자금거래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과 중국은 올들어 부쩍 HSBC에 압박을 올리고 있다. 환구시보는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을 앞둔 지난 5월 말에도 HSBC가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 최고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렁춘잉 부의장은 “HSBC의 중국 내 사업이 하루아침에 다른 은행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며 “HSBC가 서방 각국의 방침을 따르겠다면 중국에서 돈을 벌어가게 그냥 놔둘 수 없는 일”이라고 엄포를 놨다. HSBC가 홍콩보안법 지지를 공식 표명한 뒤 문제는 더 꼬였다. 환구시보는 자국 인사들을 인용해 “HSBC의 입장이 너무 늦게 나왔다”며 “앞으로 구체적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평론했다.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HSBC가 미국 제재 명단에 오른 이들에게 계속 금융 서비스를 하고 있다”며 HSBC가 중국 당국의 홍콩 탄압을 방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6월엔 “HSBC가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거리는데, 이렇게 비굴한 일을 해봤자 중국 정부의 존중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례적인 맹비난을 쏟아냈다. 중국·서방 ‘반반 회사’수많은 금융기업 중 유독 HSBC만 미·중 갈등 소용돌이를 크게 겪는 데엔 이유가 있다. HSBC는 중국·홍콩과 미국·영국의 영향력이 거의 반씩 뒤섞여 있는 회사라서다. HSBC의 원래 이름은 홍콩상하이은행이다. 1866년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에서 영국 상인들을 위해 출범했다. 1993년엔 홍콩 반환을 앞두고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주요 매출처도 중국·홍콩과 미국·영국으로 나뉜다. 지난해 실적 기준 홍콩과 중국 비중이 합 40.7%, 영국과 미국이 33%를 차지한다. 주요 주주 구성도 반반씩이다. 대주주도 중국·홍콩계와 미국·영국계가 거의 양분하고 있다.최근엔 중국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중국핑안보험그룹은 지난 28일 HSBC은행 1080만주를 약 3억 홍콩달러(약 452억원)에 추가 매입해 8% 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2대 주주인 미국 블랙록은 7%대 지분을 갖고 있다. "'미·중 딜레마', 장기화 전망"이같은 구조 때문에 HSBC의 ‘미·중 딜레마’는 장기화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일단 중국을 거스를 수는 없다. 씨티그룹은 지난 20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은 강력한 조치 없이도 HSBC의 거래처를 은근히 압박해 ‘불필요한 거래’를 끊게 할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아예 시들어버리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그렇다고 대놓고 중국 편에 서기도 어렵다. 글로벌 금융기업이라 미 달러화 거래 의존도가 높아서다. 제프리 핼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ANDA) 수석 애널리스트는 “HSBC가 미국에 ‘미운털’이 박히면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체계에서 퇴출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중국에서 사업 기회를 늘려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미·중 딜레마’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시장은 HSBC의 하락세가 한동안 더 이어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4일 홍콩 파생상품시장에선 오는 12월 말까지 HSBC 주가가 18.50달러까지 내릴 것으로 보는 상품이 HSBC 관련 옵션 중 두번째로 많이 거래됐다. 기존 대비 30% 더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난 23일 27홍콩달러 선까지 내렸던 HSBC 주가는 지난 28일부터 30홍콩달러선을 회복했다. 핑안보험그룹이 주식을 대거 매입했다고 알려진 뒤 주가가 반등했다.그러나 증권가 반응은 차갑다. 홍콩 킹스턴 증권의 디키 웡 리서치본부장은 "이번에 주가가 회복한 것은 단순히 기술적 반등일 뿐"이라며 "여전히 (미국과 중국 간) 정치적 긴장 한복판에 있어 전망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요 투자자 일부도 회의론으로 돌아서고 있다. 전 홍콩증권거래소(HKEX) 부의장을 지낸 최첸포섬 홍콩 국가자원증권 회장은 “40년 넘게 HSBC 주식을 보유했는데 이번엔 믿음을 잃었다”며 “주가가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