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원로들, 부동산 쓴소리

홍재형 전 부총리 "수요공급 전혀 고려 안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稅강화로 부작용만 키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일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한국의 경제질서를 바꾼 개혁, 금융실명제》 발간 보고회를 열었다. 편찬위원장을 맡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앞줄 왼쪽 세 번째)를 비롯해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두 번째),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다섯 번째),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첫 번째) 등이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일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한국의 경제질서를 바꾼 개혁, 금융실명제》 발간 보고회를 열었다. 편찬위원장을 맡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앞줄 왼쪽 세 번째)를 비롯해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두 번째),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다섯 번째),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첫 번째) 등이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전직 경제부총리 등 경제 원로들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일제히 쓴소리를 했다. “수요 공급의 경제원칙을 무시하고 부동산 세금을 무리하게 올려 서민들의 피해만 키우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는 10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경제질서를 바꾼 개혁, 금융실명제》 발간 보고회 후 기자와 만나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부동산시장을 세금으로 잡겠다는 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수장을 지낸 홍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 초기엔 여당(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일조했다. 그는 “당시엔 세금 부담을 제한적으로 설계했는데 현 정부 들어 너무 급격히 세율을 올렸다”고 했다. 종부세 최고 세율은 노무현 정부 때 3.0%였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이를 3.2%로 올렸고 내년엔 6.0%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부동산 양도소득세와 취득세율도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도 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강화에 대해 “어떤 세금도 이렇게 단기간에 급격히 올린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 대상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부족한 것도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재정 확대 정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단기적 대응에 급급해 재정 지출과 나랏빚을 급격히 늘리면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준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질서를 바꾼 개혁, 금융실명제》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육성으로 듣는 경제기적 편찬위원회’가 펴냈으며 《코리안 미러클》 시리즈의 여섯 번째 단행본이다.
"나랏빚 증가 속도 너무 빨라…미래 세대에 엄청난 짐 될 것"
전직 경제 수장들, 시장원리 기반한 정책 주문
“단기적인 경기 대응에 치중해 나랏돈을 펑펑 쓰다가는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짐을 지우게 됩니다.”

“정책의 유효성과 수단의 적정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이면 일반 서민까지 피해가 커질 것입니다.”

10일 《한국의 경제질서를 바꾼 개혁, 금융실명제》 발간 보고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경제 원로들이 작심한 듯 쏟아낸 고언(苦言)이다. 보고회엔 한덕수 전 국무총리,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백운찬 전 관세청장, 윤용로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전직 경제 수장들이 대거 모였다.

이들은 “현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는 잘 대응했다”고 칭찬하면서도 재정 확대 정책과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부작용이 크다고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 원로들은 “시장경제와 수요 공급의 원칙 등 경제의 기본 원리에 기반해 정책을 추진해달라”고 공통적으로 주문했다.
“과도한 국가 부채 미래 세대에 부담”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 해소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국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확장 재정 정책을 펴고 있다. 2010~2017년 2~5% 범위 안에 있던 재정 지출(본예산 기준) 증가율은 2018년 7.1%로 뛰었고, 작년과 올해는 각각 9.5%, 9.1%로 커졌다. 올해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세 차례에 걸쳐 59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다. 이 바람에 2018년 681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작년 729조원, 올해 839조원까지 불어났다.

경제 원로들은 정책 목표는 좋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전 총리는 “한국 경제의 최고 강점은 재정건전성”이라며 “지금 좀 괜찮다고 단기적인 경기 대응에 재정 지출을 급격히 확대했다가는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준다”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까지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지출 확대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내년 이후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라 살림을 운용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지출을 많이 늘리는 데만 치중해 ‘어떻게 돈을 잘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곳에 나랏돈을 써야 하는데 퍼주기 정책이 너무 많다”며 “이로 인해 급증한 나랏빚은 우리 아이들에게 엄청난 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동산 정책, 수요 공급 원칙 따라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이어졌다. 진동수 전 위원장은 “정부 정책은 대상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정책 수단의 적정성, 유효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시행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런 과정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시행돼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자산은 많지만 소득이 없는 어르신 등에 대한 정책 배려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갭투자’를 잡기 위해 추진한 전세대출 규제 강화 정책도 전세 매물 급감과 임대인의 월세 전환 강요 등으로 이어져 세입자의 고통이 커졌다는 지적이 많다.

홍재형 전 부총리는 “부동산 가격은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이런 경제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수요 억제책, 세금 인상 정책만 추진하니 국민의 고통이 커진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강 전 부총리는 “공급을 늘리는 방향은 맞다”면서도 “민간 이익을 대거 환수하는 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8·4 부동산 대책’에서 민간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 규제 등을 완화하는 대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이익의 90%를 국가가 환수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강 전 부총리는 “현 정부 들어 국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해 시장경제 원칙을 뒤흔드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경제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정책을 펴달라”고 당부했다.

서민준/강진규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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