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공략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경쟁사와 협력하는 국내 기업 사례가 늘고 있다. ‘실리’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발(發)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업계에서 이런 움직임이 뚜렷하다.
제약·석유화학·금융 라이벌도 뭉친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지난달부터 오랜 경쟁 관계에 있던 한화종합화학으로부터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을 공급받고 있다. PTA는 합성섬유와 페트병의 중간 원료다. 한화종합화학이 롯데케미칼에 공급하는 PTA 규모는 연산 45만t이다.

롯데케미칼은 연산 60만t 규모 PTA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쟁사로부터 제품을 조달하는 것은 고부가가치 소재인 고순도 이소프탈산(PIA)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PIA는 기술 장벽이 높아 세계 7개 업체만 제품을 양산 중이다. 국내 최대 PTA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종합화학도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제약업계에서도 협업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한미약품과 GC녹십자는 희귀질환 LSD(리소좀 축적질환) 극복을 위한 혁신신약 개발에 함께 나섰다. 업계에선 신약개발 역량이 뛰어난 한미약품과 LSD의 일종인 헌터증후군 치료제 개발 경험이 있는 GC녹십자의 협업이 ‘시너지’를 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산 담배의 자존심 KT&G와 글로벌 담배업체 필립모리스도 손을 잡았다. KT&G는 궐련형 전자담배 ‘릴’을 필립모리스 유통망을 통해 세계로 수출한다. 필립모리스는 ‘릴’의 경쟁 제품인 ‘아이코스’를 판매하는 업체다.

금융계 라이벌인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도 지난 5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